“우크라 공격땐 강력 경제제재” 바이든, 백악관 상황실서 푸틴에 경고
푸틴은 나토의 東進 중단 요구
대러 경제 제재 위협했지만 푸틴 억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 오전 10시 7분(현지 시각)부터 낮 12시 8분까지 백악관 지하 상황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했다. 지난달 열린 미·중 화상 정상회담 때만 해도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 행사에 자주 사용하는 집무실 옆 회의실 ‘루스벨트룸’에서 시진핑 주석과 마주했다. 위급 사태 때나 찾아야 할 상황실에서 정상회담을 한 것은 그만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에 이어 미·러 간 긴장도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회담은 러시아가 10월 말부터 우크라이나 국경에 약 10만명의 대군을 집결시켜 놓고 있는 가운데 열렸다. 미 정보 당국은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틈에 친러 세력을 이용해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했던 러시아가 내년 초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고 본다. 소련의 구성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생각하는 푸틴 대통령이 일종의 ‘통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날 2시간가량 진행된 정상회담 후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미국과 유럽 동맹들이 ‘강력한 경제 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미국이 가할 수 있는 ‘초강경 제재’ 중 하나로 지난 9월 완공돼 가동을 앞두고 있는 ‘노르트스트림2′의 운영을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르트스트림2는 러시아에서 출발해 발트해를 지나 독일 북부로 연결되는 해저 천연가스 수송관으로 이미 완공은 됐지만 독일의 총선 등 정치 일정 때문에 정식 가동 승인이 미뤄져 왔다. 러시아는 이 가스관이 조속히 운영되도록 독일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FT는 이날 “다양한 경제적 수단이 망라된 제재 패키지 중 하나로 노르트스트림2 가동 차단이 포함됐음을 미국 고위 관리 2명에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FT는 “미국이 독일 정부는 물론 유럽연합(EU)의 다른 나라들과 함께 (노르트스트림2 가동 차단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해왔으며, 올라프 숄츠 신임 총리가 이끌 독일의 새 정부와도 의견을 나눴다”고 전했다. 노르트스트림2는 연간 55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 본격 가동될 경우 유럽 내 천연가스 사용량의 약 40%를 공급하는 러시아의 점유율이 더 올라갈 전망이다. 이 때문에 노르트스트림2가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더 키우는 ‘지정학적 무기’가 될 것이란 우려가 미국 등을 중심으로 계속 제기됐다.
그러나 노르트스트림2 가동 차단이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이 될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러시아도 일부 타격을 받겠지만 고통은 유럽 쪽이 훨씬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최근 에너지 대란 등으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이 줄거나 중단될 경우, 유럽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 들어 푸틴 대통령이 유럽의 가스 공급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유럽 내 천연가스 가격은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 위협이 이미 수년간 미국과 EU의 경제 제재를 받아온 러시아를 억지(抑止)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러시아 측 발표에 따르면, 푸틴은 바이든과 정상회담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우리 국경에서 군사적 잠재력을 키우고 있다”며 “나토가 러시아와 인접한 (나토 블럭의) 동쪽에서 회원국을 늘리거나 공격용 무기를 배치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법적 조치를 요구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나토 가입을 희망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거절하라는 뜻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회담이 “현재까지 바이든의 대통령직 수행에서 가장 큰 외교 정책 시험대 중 하나였다”고 보도했다. 유럽의 안정, 미국 위협의 신빙성,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달려 있는 매우 중요한 회담이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역사적 통일성’을 들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대만 통일을 원하는 중국을 억지하는 것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러시아를 확실하게 억지할 뾰족한 수가 없는 현실은 바이든 외교의 ‘이상’과 ‘현실’ 간 간극을 보여준다.
바이든은 취임 직후부터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구도를 내세우며 시진핑과 푸틴이란 두 ‘스트롱맨(철권 통치자)’에게 맞서는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려고 했다. 9~10일 열리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도 그 일환이다. 그는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하고자 국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8월 말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를 완료했다. 이를 계기로 인도·태평양에 더 많은 병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혼란으로 끝난 아프간 철군 이후에도 이런 구상은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바이든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를 들어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했지만, 이런 미국의 리더십에 호응하는 국가가 생각보다 많지 않으면 오히려 체면이 깎일 우려도 있다. 중국과의 갈등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아내야 하는 과제가 더해지면서 바이든의 고민은 여러모로 깊어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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