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한파 속 비닐하우스 사망 1년..여전히, 마음은 춥고 몸은 고된 그들
[경향신문]
10명 중 4명 ‘우울군’ 해당
농축산업 종사자 특히 심각
‘10시간 이상 일한다’ 40%
한파가 몰아친 지난해 12월20일 경기 포천시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가 비닐하우스 숙소(사진)에서 잠을 자다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후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정부는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얼마나 달라졌을까.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10명 중 4명은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강은미·윤미향 의원 주최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안전보건 및 노동권 실태와 과제 토론회’에서 이진우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장이 이 같은 내용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센터장은 지난 8~10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63명을 상대로 심층면접과 우울증 선별검사를 진행했다.
조사 참여자 중 우울증 위험이 있는 ‘우울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은 40.3%에 달했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수준인 경우도 11.3%였다. 2018년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우울군으로 분류할 수 있는 10점 이상의 비율이 여성은 6.1%, 남성은 2.5%로 나타났는데 이번 조사에서는 각각 52.5%, 19.1%로 훨씬 높았다.
업종별로 분류하면 농축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우울군 비율이 63.6%로 제조업(14.8%)에 비해 높았다.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비율은 18.2%였다. 조사 참여자의 54.0%는 불안감이 있다고 했고, 50.8%는 우울감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 센터장은 “조사 참여자들은 우울증 증상 유병률이 13배 정도 높고, 특히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는 20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했다.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었는데 갈 수 없었던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조사 참여자의 55.7%는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병원에 가지 못한 이유(복수응답)로는 ‘병원에 가도 의사소통이 안 될 것 같아서’(34.9%),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서’(31.7%), ‘병원이 어디 있는지 모르거나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몰라서’(23.8%) 등이 주로 꼽혔다.
장시간·저임금 노동은 여전히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노동시간이 8시간 이하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경우는 35.0%에 불과했다. 10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경우가 40.0%였다. 평균 노동시간은 9.8시간이었는데,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경우 1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가 58.7%로 더 높았다. 주 5일 근무를 한다는 답변은 39.3%뿐이었고,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는 답변이 29.5%였다. 농축산업 노동자는 일주일에 6.1일 이상 일하는 경우가 54.8%로 과반 이상이었다. 조사 참여자의 월평균 임금은 189만7000원으로,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비율이 49.2%나 됐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른 노동시간·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윤미향 의원은 “법을 위반해 이주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용자에 대해서는 고용허가를 제한하는 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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