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주교 지팡이
[경향신문]
세계적으로 주요 종교에는 저마다 뿌리라 할 경전이 있다. 성경, 불경, 쿠란이 대표적이다. 대대로 독특하고도 엄격한 의례도 내려온다. 각 종교가 성스럽게 여기는 성지, 성물들도 있게 마련이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낼 만큼 종교 공동체를 굳건히 하는 요소들이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신화와 전설, 상징이 녹아들면서 신앙심을 뜨겁게 북돋우기도 한다.
각 종교의 성직자들도 직위 등에 따라 저마다 상징물이 있다. 오직 그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니 권위를 드러낸다. 그중 하나가 지팡이다. 천주교에서는 고위 성직자인 주교에 서품될 때 ‘주교 지팡이’가 수여되고, 교구장 착좌식(취임식)에서도 등장한다. 목장(牧杖), 목자 지팡이라고도 불리며 주교의 권한과 담당 관할권을 상징한다. 윗부분이 둥글게 휘어진 형태로 옛 양치기, 목자들의 지팡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지팡이 이미지가 유명하다. 불교에서는 큰스님들이 설법할 때나 주요 의례에 ‘주장자’라는 지팡이가 나타난다. ‘지혜의 지팡이’라고도 불리는 주장자는 불법(佛法)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신임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의 주교좌 착좌식이 열렸다. 서울대교구장은 신자 수 150만명으로 천주교 최대 교구의 수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도 겸한다. 전임 염수정 추기경의 뒤를 잇는 정 대주교의 이날 착좌식에서도 주교 지팡이가 등장했다. 염 추기경이 목장을 전달했고, 목장을 건네받은 정 대주교는 비로소 주교의 권위를 상징하는 자리인 주교좌(교구장 의자)에 앉아 사제들의 순명서약을 받았다. 염 추기경은 “정순택 대주교님은 하느님 백성과의 친교와 경청, 남북 형제들 간의 화해뿐 아니라 세상 자연환경과도 일치하고 함께하는 자세를 지니셔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정 대주교는 강론에서 “하느님 백성 모두와 함께 기도하며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교회상이 무엇이며, 우리 교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모색하고 고민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탈종교 현상이 두드러지지만 세상과 삶이 팍팍해질수록 종교의 역할은 막중하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정 대주교의 지팡이가 빛과 소금의 소중한 역할을 하기를 기도한다.
도재기 논설위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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