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48〉인문사회 연구자가 과학기술 연구자에게 드리는 글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융합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선도국가가 되기 위한 필수라고 한다. 막상 융합연구 현황을 살펴보면 그것이 간단치는 않다. 그동안의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 부족은 상대에 대한 이해 부족이며, 그것이 때로는 다른 학문을 경시하는 태도로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목도되는 현상이다. 여러 분야가 함께하는 길에는 언제나 갈등 요소가 있으며, 이것을 넘어설 때 비로소 융합연구도 가능하고 국가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나는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인공지능(AI) 기술청사진 2030'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 프로젝트 초기에 관련 담당자들과 인문사회 연구자를 추천하기 위해 논의한 적이 있다. 해당 담당자는 인문사회 연구자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연구 기본 방향이 정해진 후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처음부터 인문사회 연구자와 함께 일하면 여러 복잡한 문제를 제기, 일의 진행이 어려워질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나무랄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과학기술 연구자 시선에 따르면 인문사회 연구자는 끊임없는 문제 제기로 일을 어렵게 진척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인문사회 연구자의 특성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융합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온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의 내면에는 상호 간 융합 경험 부족이 담겨 있다.
당시 담당자는 인문사회 연구자에 과학기술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발굴하는 능력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연구재단의 과학기술 전문가들과의 대화에서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인문사회 연구자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 융합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에서 '인문사회 분야 연구 어젠다 도출'이라는 정책과제를 발주한 적이 있다. 그 결과에서 29개 어젠다를 도출하고, 이렇게 도출된 어젠다로 연구할 주제를 발굴했다. 예를 들어 '노인의 생활과 삶'이라는 어젠다에서 '노인복지의 중요성과 범위, 수준 제시' '빈곤과 안전 문제' '노인인구 증가와 인구구조 변화가 인간의 삶에서 갖는 의미' '노인 문제가 사회적 불안정에 미치는 영향' 등이 세부 주제로 제시됐다.
어젠다와 주제만을 보면 인문사회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살펴보면 과학기술과 융합이 필연으로 요구된다. 예를 들어 건축학과 융합한다면 건축학자가 아파트단지를 설계할 때 노인 활동을 중시해서 가능하면 건강하고 안전한 아파트 개념을 도입, 노인의 외로움이나 자살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로봇공학과 융합한다면 노인 세대의 심리적 특성을 고려, 노인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강아지로봇을 개발할 수 있다.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융합연구 강화를 위해서는 예산 문제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2022년 약 30조원인 가운데 인문사회 분야 예산은 1%인 약 3000억원이다. 외국과 비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또 한국연구재단 사업 가운데 인문사회 연구지원사업에는 과학기술 연구자를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사업이 있지만 과학기술 연구지원사업에는 그 반대의 것이 없다. 과학기술 선도국이 되려면 과학기술 연구가 인문사회 연구를 활용하는 융합연구도 활성화해야 하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전공은 철학이지만 자연철학을 하고 싶어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몇 년 동안 공부한 적이 있다. 거기서 물리학과 출신인 현재의 아내를 만났다. 나는 '17세기 자연철학' '동물인지와 데카르트 변호하기'라는 책도 썼다. 전공도 융합이고 가정도 융합이다. 과학기술 연구자에게 인문사회 연구자와 함께 융합연구도 하길 권한다. 귀한 자식을 얻을 수도 있다.
김성환 대진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 shkim@daej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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