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심을 남길 것인가
[왜냐면] 황지은 |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네? 대한민국에서요?” 서울 을지로 노포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하던 대학생 인턴 연구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현행 제도로 재정비촉진지구 내에서 건물주 75% 이상 동의를 얻은 시행사가 해당 구역의 건물을 철거하고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며, 동의하지 않은 건물주들은 사업이 진행되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퇴거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서였다. 그래서 그 식당의 사장님은 곧 영업을 마쳐야 한다는 이야기도. 청년들의 격한 반응에 나도 놀랐다. 그것은 개인의 재산권을 공공연히 침해하는 제도가 2021년 대한민국에 존재하냐는 강한 반문이었다. 20세기 제도와 21세기 가치관이 충돌하는 장면이랄까.
지난달, 오세훈 서울시장이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가 회자되었다. 10년 전 전면철거 재개발 계획의 무산에 대한 회한이었다. 그러나 세운재정비촉진지구를 매끈한 신도시풍 업무지구로 거듭나게 하려는 도시계획 정책 방향은 꽤 강력한 관성으로 남아 있다. 2014년 이후 박원순 시장이 보존형 도시재생으로 정책 기조를 바꾸었지만, 세운상가군 보존과 보행데크 연결로 유입되는 새로운 에너지가 오히려 그동안 팽팽했던 이해관계의 긴장을 무너뜨리면서 최근 자본에 의한 재개발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2004년 이명박 시장이 그렸던 도시환경정비 밑그림에서 공공이 직접 재개발의 본보기를 보여주려 했던 종로변 세운 4구역도, 오랜 진통 끝에 이제 서울주택도시공사 주도로 철거가 목전에 있다.
국외 전문가들은 서울 도심에 생산기지가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매우 놀라워한다. 대량생산 시대를 거치며, 뉴욕, 런던, 브뤼셀, 베를린 등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잃어버린 생산기능을 재유치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인데 서울은 이렇게 잘 보존하고 있다니 너무 부럽다는 반응이다. 메이드인뉴욕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애덤 프리드먼은 2019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 뿌리 깊은 메이커 문화를 관찰하며,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괄목할 만한 사례로 평가했다. 지역의 제조업 기반을 존중하는 서울시가 공공 재원으로 전략기관을 지원하고 로봇, 드론, 3D 프린터 등 첨단 제작 기술을 접목하여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이 지역의 정체성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사연은 조금 다르다. 1970년대 말 서울 도심 재개발 계획이 추진되기 시작한 이후, 세운 일대는 50년간 복잡한 재개발 이해관계와 자본의 역학 안에서 역설적으로 그대로 남겨진 것이라 여겨져왔다. 그런데 우연히 남겨진 운명일 수도 있지만, 한편 치열한 욕망이 넘치는 도심에서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의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2000년 이후 통계청 사업체조사 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의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재개발 기회를 기다리는 동안 노후화한 공간 환경은 분명히 개선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이제는 그 독특한 풍경과 고유한 매력에 청년들이 모이고, 창업을 구상하며, 뉴 레트로, 힙지로라는 새로운 명명을 따라 에스엔에스(SNS)의 성지가 되고 있다.
시대가 변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잃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서울의 도심에는 깊고 복잡한 역사의 켜들이 겹쳐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부모 세대의 규범과 자녀 세대의 정서가 충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양성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지금 시대의 경제 논리는 대량생산 체제의 수량적 계산법보다는 다양한 영향력을 내포한 관계망 안에서 사회적 자본의 가치를 평가한다. 어떠한 정책 선언도 이러한 현실과 잠재력을 직시해야 한다. 옥상이 아니라 거리의 눈높이에서 살펴야 한다. 10년 전 잣대로 오늘을 재단하면 안 된다.
2021년, 우리는 어떤 서울의 도심을 미래세대에게 남길 것인가? 주택 공급, 역사 보존, 경제 활성화 등 다양한 정책 목표가 교차하는 서울의 한복판에서 분노해야 하는 것은, 가장 깊은 통찰과 지혜가 담겨야 마땅할 도심의 미래 공간에, 과거의 규범으로 수동적으로 이 빠진 퍼즐을 메우고 있는 현실이다. 그동안 모든 서울 시장의 꿈과 수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축적되어 있을 텐데, 수도 서울의 중심은 지금 부동산 임대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 도심의 가치를 지속시키고 가꿀 수 있는 자각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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