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강을 노래할 수 없다면

한겨레 2021. 12. 8. 18: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강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강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물길을 따라 흐르기 때문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매립장 예정 부지는 석회암 지역이어서 동굴과 동공이 많아 계획대로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와 침출수 유출사고가 나게 되면 직선거리로 2.5㎞ 떨어진 서강뿐만 아니라 한강으로 이어지는 남한강 수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강 수계를 마음껏 노래하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다릴 뿐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김용희 | 동서강보존본부 감사

강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강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물길을 따라 흐르기 때문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부를 때 많은 것들이 따라온다. 어름치나 금강모치 같은 물고기들이나 강변에 무리 지어 피어난 하얀 구절초, 붉은 노을의 잔상처럼 강물을 물들이는 갈참나무의 단풍 등. 강의 형세를 따라서 어머니의 강, 아버지의 강이라 부르기도 하고 사람들마다 그곳에 얽힌 삶의 기억들을 덧붙여 누이, 형제의 강이 되기도 하고 그곳에 시를 입히면 시인의 강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신동엽 시인의 금강, 신경림 시인의 남한강도 그중 하나이다.

영월에는 동강과 서강이라는 두 개의 큰 강이 흐른다. 영월의 서쪽으로 흘러드는 서강은 상류에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가 있어 역사의 강이기도 하다. 또한 감입곡류의 골짜기마다 스며든 물줄기가 한 고개를 넘으면 지워졌다가 신기루처럼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그리움의 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넉넉하고 부드러워 그곳에 기대 사는 사람들조차 그 강을 닮아 마음이 넓고 선하다.

그런 그곳에 쌍용씨앤이(C&E)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온다고 하여 지금 1년 넘게 반대투쟁이 진행 중이다. 지난 5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 반대 1인시위는 210일을 넘겼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은데다 쌍용이라는 거대자본에 맞서 반대하는 일이 짧은 시간 내에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선택한 최선의 전략이었다.

참가자들은 포도봉지를 씌우다가 오기도 하고 감자를 캐던 손을 멈추고 달려와 반대 팻말을 들었다. 출근을 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1인시위를 하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는 데는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낸 용기가 그들을 그 자리에 세웠다. 무엇보다 1만5천년 전부터 흐르는 일을 멈추지 않은 서강에 산업쓰레기를 돌려주려는 자본의 상상력에 침묵으로 힘을 보태고 싶지 않아 낸 용기였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지역에서 자신을 210일 이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네거리 길에 세우는 일은 어쩌면 그동안 쌓아온 삶의 경계를 허물 각오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긴 투쟁의 시간에 비해 주장은 단순하다. 60년 동안 석회석을 채굴한 그곳에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짓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는 것이다. 매립장 예정 부지는 석회암 지역이어서 동굴과 동공이 많아 계획대로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와 침출수 유출사고가 나게 되면 직선거리로 2.5㎞ 떨어진 서강뿐만 아니라 한강으로 이어지는 남한강 수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 내내 왕벚꽃나무를 옮겨 다니며 투쟁에 연대해주던 물까치 떼들과 직박구리가 사라지고 빈 나루터를 노랗게 밝히는 산국화에 앉은 나비와 벌, 낮은 물살 틈에 산란탑을 쌓던 어름치마저 사라진다면 그곳에 기대 살던 우리는 괜찮을까. 강을 잃으면 그곳에 기대 살던 삶도 사라진다. 노래와 시도 방향을 잃은 채 떠돌 것이다. 남한강 수계를 마음껏 노래하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다릴 뿐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