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신문 통해 만나는 100년 전 유학생들
1909년에도 미국으로 간 영재가 있었다 1920년대엔 일본 관비유학생 가장 많아 독일엔 의학·공업 연구 위해 유학가기도
100년 전 암울한 현실을 뒤로 하고 조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유학을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푸른 꿈을 가슴에 품은 그들 중에는 민족을 위해 헌신한 이들도 있고, 식민지 관료가 되어 해악을 끼친 사람도 있다. 당시 유학생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1909년 3월 24일자 신한민보를 보자. '박(朴)씨 의거(義擧)'라는 제목의 기사다. "와이오밍 지방에 있는 박인선씨는 클래몬트 유학생 도제근씨의 학비가 간신(艱辛; 매우 어려움)하다는 말을 듣고, 금화 20원을 보내며 공부에 더욱 힘써 우리나라 중흥의 영재가 속히 되라고 권면(勸勉; 격려)하였다더라." 1920년 12월 17일자 매일신보에는 '구자옥(具滋玉)씨 시카고(市俄古) 유학, 오는 18일에 출발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간사로 있어 가지고, 우리 사회의 모든 청년들의 앞길을 인도하기에 5,6년 동안을 노력하던 구자옥 씨는 이번에 유학을 할 목적으로써 오는 18일 오후 7시 20분발 남행열차로 출발하여 북미 합중국 치카코(시카고)로 향할 터이라더라."
이를 보면 당시에도 이미 미국에서 공부하는 분들이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유학생이 가장 많던 나라는 일본이었다. 1921년 4월 7일자 매일신보에 나온 관비유학생(官費留學生)에 관한 기사다. "총독부에서는 금년도 각 관립학교 졸업생 중 일본 관비유학생을 선정하고, 어제 6일 각 본인에게 지령장(指令狀)을 송부하였더라. 경성고보 출신 조재호(曹在浩), 평양고보 출신 심형필(沈亨弼), 대구고보 출신 사공환(司空桓), 함흥고보 출신 김만희(金晩熙), 평양여자고보 출신 최태선(崔泰嬋), 경성여자고보 출신 김순영(金順英)과 같으며, 또 관비유학을 마치고 금년 귀선(歸鮮)한 사람은 제국대학 공학과 박장렬(朴璋烈), 도쿄(東京)고등공업 구명회(具明會), 문부 교원양성소 손원규(孫員圭), 야마구치(山口)고등상업 박영철(朴泳喆), 히로시마(廣島)고등사범 박영빈(朴永斌), 고베(神戶)고등상업 정태원(鄭泰原), 교토(京都)제국대학 의학과 박창훈(朴昌薰) 등 7명이라더라."
당시 유학은 주로 일본이었지만 독일로 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1921년 9월 12일자 매일신보에 게재된 '독일 유학 가는 의학생(醫學生), 이석신 군과 이성용 두 명'이란 제목의 기사다. "금년 봄에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우량한 성적으로 졸업한 평양 태생인 이석신(李錫申, 23)군과 경성 태생인 이성용(李星鎔, 22) 두 명은 따뜻한 고국의 산천을 떠나 산 설고 물 설은 독일로 의학을 연구하여 조선 의학계의 면목을 일신(一新)케 하고자, 오는 15일에 남대문역을 떠나 요코하마(橫濱)를 경유하여 목적지로 향한다는 바, 독일에 유학하게 됨은 아직까지 미미한 조선 의학계를 위하여 실로 경하할 일이다."
같은 해 9월 23일자 매일신보에도 독일 유학 기사가 실려있다. '독일 유학 가는 황우일(黃祐日)군, 공업을 연구하고자'라는 제목의 기사다. "경기도 강화군에 사는 황우일 군은 지금 25살의 청년으로, 대정 5년(1916년)에 중앙학교를 졸업한 후 동경으로 건너가 외국어학교에서 4,5년 동안 영어를 연구하던 중, 드디어 독일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이 되어 오늘 아침 특급으로 동경으로 건너가서 바로 유학지인 독일로 향할 터이라는 바, 중앙학교 동창생들은 멀리 떠나는 황 군을 위하여 지난 21일 저녁에 명월관에서 성대한 송별회를 열었다."
당시엔 해외유학 자체도 드문 일이었지만 더 드문 것은 여학생들의 유학이었다. 1920년 9월 12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원산 여자 교육계를 위하여 6개 성상(星霜; 한 해 동안의 세월)을 원산사립 진성(進誠)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김태순 양은, 이번에 교원 직을 사직하고 일본에 유학할 목적으로 지난 8일 원산발 열차로 유학의 길에 올랐는데, 청년 남녀 수백 명의 견송(見送)이 있어 정거장은 일시 혼잡을 보였다더라."
1921년 11월 22일자 동아일보도 여학생 유학을 다루고 있다. "여자의학전문학교에서는 오는 24일에 졸업식을 거행할 터인데, 이번에 졸업하는 학생 중에는 방년 24세의 꽃 같은 조선 여자 현덕신(玄德信) 양이 있는데, 현 양은 그 학교 조선인 졸업생 정자영((鄭子英), 박정자(朴貞子), 허영숙(許英肅) 세 명의 뒤를 이어 넷째로 졸업하는 바, 현 양은 경성 이화학당 중등과 출신으로 5년 전에 동경 유학의 길을 떠나 5년 동안 형설(螢雪)의 공(功)을 닦은 결과, 조선에서 네 번째 여의사가 되었다."
시집 가라는 부모에게 편지 한 장 달랑 써놓고 독일로 유학을 간 박영남 양의 사연도 1921년 8월 23일자 매일신보에 실렸다. "1917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후, 3년간을 어의동 공립보통학교의 부속여자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모은 봉급 1천여 원을 가지고 10년 후에나 만나보겠다는 말과 동생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만족한 공부를 시키도록 하기를 바란다는 편지를 써놓고 독일로 떠났다."
다채로운 유학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닌 이를 소개하는 기사도 눈에 띈다. 1921년 5월 28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진남포 출신의 노정일(盧正一)이란 분은 진남포에서 중학과를 마치고 1911년에 동경에 건너가서 청산학원 중학과에 입학하여 졸업 후 1914년에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공부하고 1920년 봄에 영국에 건너가서 철학박사원이 되었고, 그 후에는 불란서, 서서(瑞西 ; 스위스), 이태리 등을 거쳐 홍해를 건너 인도와 남양군도를 구경하고, 유태인의 성지와 애급(埃及 ; 이집트)을 답파하고, 향항(香港; 홍콩)과 상해를 거쳐서 북경을 지나서 경성으로 돌아왔다."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이란 글귀가 있다. 옛날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배웠지만, 오늘날은 남을 위해 배운다는 뜻이다. 100년 전의 유학은 국가를 위해 떠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유학은 오로지 일신의 영화(榮華)를 위한 것이 많은 듯 싶다.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보다는 무엇을 위해 공부할 것인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유학을 간다면 반드시 한번쯤은 짚어야할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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