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원,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논의 본격화..'디스커버리 연구반' 꾸렸다

홍혜진 2021. 12. 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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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증거개시제' 도입 논의
기업 "영업기밀 유출 가능성"

법원행정처가 '디스커버리(증거개시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나섰다. 미국 등 영미권 국가에서 운영되는 디스커버리는 이른바 '소송 전 증거 수집 제도'라고 불린다.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재판 당사자가 가진 소송 관련 증거를 상호 공개할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시행된다면 기업 등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에서 원고와 피고의 입증 책임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업 영업기밀 유출 등 부작용도 예상돼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말 '디스커버리 연구반'에 참여할 법관과 외부 인사 총 10명을 선발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애초 4~5명을 모집하기로 했으나 예상보다 많은 법관이 자원해 선발 인원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도 디스커버리가 처음으로 안건에 올랐다.

디스커버리가 도입된다면 원고와 피고 양쪽은 재판 전에 소송 관련 증거를 서로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확인(증거조사)하게 된다. 증거를 제출하지 않거나 인멸한다면 재판에서 패소하거나 법정 모독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디스커버리는 최근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서 벌인 '배터리 소송'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전기차 배터리 영업기밀을 침해당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낸 소송에서 승소한 데 디스커버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ITC는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소송 관련 내용증명 경고공문을 수령한 이후 증거를 보존해야 할 의무가 발생했지만 이를 어기고 관련 문서를 삭제했다고 판단했다. ITC는 디스커버리 제도에 근거해 SK이노베이션 측의 문서 삭제를 증거인멸 및 법정모독 행위로 판단하고 지난해 2월 SK이노베이션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

현행법상 민사소송에서 피해 입증 책임은 피해를 주장하는 원고가 주로 진다. 그러나 기업이나 병원 등 기관을 상대로 개인이 피해를 주장하는 경우 원고가 불리할 때가 많다. 피고가 대부분의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피고가 자진해서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이상 제출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 때문에 디스커버리를 도입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로 공개한 증거를 검토한 뒤 합의를 통해 본안소송 전에 효율적으로 다툼을 종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재계를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도 거세다. 증거 제출 과정에서 기업의 영업기밀이 유출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소송 비용과 전문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디스커버리 도입 이후 예상되는 세계적 기업들의 특허 공격에 대응할 여력이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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