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중환자실 포화..의료계 "입실 우선순위 정해야 할 때"

대한의사협회, 8일 토론회서 중환자 우선배정 기준안 논의
회복 가능성 등 고려해 입실 기준 마련 필요..사회적 합의 전제

대한의사협회는 8일 용산 임시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중환자실 병실 우선배정 기준안 마련'에 관한 전문가 토론회를 진행했다./사진 제공=대한의사협회

[서울경제]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국 중환자 병상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가운데 한정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중환자실 입실 등 치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회복 가능성이 낮은 환자의 무의미한 입원을 제한하는 등의 기준을 마련하기에 앞서 사회적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는 전제다.

홍석경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는 8일 대한의사협회 용산 임시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중환자실 병실 우선배정 기준안 마련' 토론회에서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 시기에는 최고의 치료가 아닌 최적의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며 "제한된 의료자원으로 더 많은 중환자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중환자실 입실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7,175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1일 5,122명으로 첫 5,000명대를 기록한 이후 좀처럼 확산세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위중증 환자도 840명으로, 전날 774명보다 66명 증가하면서 역대 최다치를 나타냈다.

홍 교수가 소속되어 있는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작년 8월부터 감염병 재난 상황 속 병상 대응 여력을 높이기 위해 중환자실 사용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환자의 전신수행능력(ECOG)과 의식수준, 장기손상 여부, 예측 생존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환자실 우선순위 1~4단계로 분류하는 안이다. 학회가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뇌, 심장, 폐, 간 등 주요 장기에 말기 장기부전이 발생하거나 △중증 외상이나 화상으로 예측 사망률이 90% 이상인 환자 △대량 뇌출혈, 중증 치매 등 심각한 뇌기능장애 △기대여명이 6개월 미만인 말기 암 △예측생존율이 20% 미만인 환자는 중환자실 입실 우선순위가 가장 낮은 그룹으로 분류된다. 적극적인 치료를 제공하더라도 생존 가능성이 극히 낮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높은 환자의 입실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서지영 대한중환자의학회 차기 회장은 "회복 가능성이 낮은 환자를 중환자실 입실 후순위로 배정한다고 해서 환자를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자원이 극도로 제한된 상황에서 이득이 되지 않는 환자까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게 해야 할지 여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며 "생명을 살리는 의사들이 이런 말을 해야 하는 찢어지는 심정을 국민들이 알아달라"고도 호소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중환자실 우선배정 기준 마련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임채만 한국의료윤리학회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중환자실 입원 환자의 10%가량은 이미 무의미한 입원으로 조사됐다"며 "무의미한 중환자실 입원을 줄이면 상당한 병상을 만들어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환자 병상 우선배정 기준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구하고, 병원 안에 입·퇴실위원회를 설치해 논의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해볼 만 하다는 의견이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사회적 합의가 됐더라도 환자 입장에서는 생명권을 침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며 "병상과 인력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지만 환자의 권리와 치료권이 보장되는 방안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