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새기는 시간

한겨레 2021. 12. 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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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숨&결] 강도희·최연진 | 대학원 석·박사 과정(국문학)

내가 하는 글방에서는 아이들이 매주 한 편씩 글을 써 와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은 한 아이가 레즈비언과 게이를 헷갈려 하기에 설명해주었더니 옆에서 다른 아이가 말했다. “저희 이런 이야기 그만합시다. 불쾌해요.” 다른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지는 이 마음이 어디서 왔을지 나는 생각해본다. 그 불쾌함은 퀴어인 이모, 삼촌, 선생님들과 마주한 경험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집이나 학교, 온라인 공간 등에서 만난 비퀴어 집단의 쾌락을 위해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는 그 안에서 좋은 기분과 나쁜 기분의 구분법을 배우고, 언제 어디서든 그 기분을 표출해도 안전하다고 믿게 됐을 것이다.

2007년부터 수차례 발의되고 지난 6월 국민 10만명이 청원해 입법 심사 대상으로까지 올랐던 차별금지법을, 국회는 결국 2024년 5월까지 심사를 미뤘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더딘 가장 큰 이유는 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 관련 항목에 대한 일부 보수 개신교의 반대 때문이다. 특히 중장년층 반대세력은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아동 청소년이 동성애나 트랜스젠더에 빠진다고 주장한다. 성스러운 가족 재생산의 의무를 따르지 않는 퀴어를 향한 혐오에 재생산의 결과물인 아동이 동원되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일이다. 부모의 손을 잡고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에 나온 아이에게 나는 묻고 싶다. 너는 어쩌다 이성애와 시스젠더의 홍수에 빠지게 되었니.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은 날 때부터 몸 안에 갖고 있는 것만도 아니고, 유행하는 옷처럼 ‘나쁜 친구’를 따라서 입었다 벗었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라 아메드의 말대로 우리는 집처럼 익숙한 공간에서 가까이 놓인 대상들을 향해 특정한 동작을 반복한다. 이 지향은 몸을 변형한다. 사무용 등받이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그에 걸맞게 등은 살짝 누워 있고 마우스와 가까운 오른 어깨는 약간 들려 있다. 장기간 사용해도 편안하다는 의자 덕분에 하루 종일 앉아 있게 됐다. 내게 편한 몸은 다른 자세와 몸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것을 만든 환경이 좀처럼 의식되지 않고 원래 다 그렇다고 여겨진다. 아이는 파랑과 핑크로 구분된 <상어가족> 영상을 보고, 앞뒤로 다른 출석번호나 복장규정을 부여받으면서 남녀를 인식한다. 이성인 짝과 손을 잡고 소풍을 가거나 나란히 앉으면서 그러한 배치가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혐오는 내게 편한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 될 때 발생한다. 젠더 규범에 모자라 차별을 몸에 새기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차라리 그렇게라도 열심히 투자한 자녀 세대가 정상 가족을 만들고 대를 이어 되갚기를 바라는 구세대의 소망 아닐까. 그러나 아무리 가둬 앉혀놓아도 금방 뻗어나가는 아이들의 몸은 부모가 모르는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은 몸들과 접촉한다. ‘여고에선 이미 레즈파티 났는데 진짜 어른들만 모른다ㅋㅋ’ 청소년 콘텐츠 제작소 ‘문제없는 스튜디오’의 한 유튜브 영상 댓글처럼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고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는다 해서 퀴어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동성애에 빠질지 모르는 아이를 보호를 빙자해 구속하는 일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을지 모르는 퀴어 청소년을 그들을 없는 존재로 만드는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하루빨리 구하는 일이다. 2024년까지 3년은 누군가에게는 원래의 위치에서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돌봄과 교육을 받고 취업을 하고 주거나 가족계획을 세우는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남들보다 기회가 적게 주어지거나 몸과 마음의 힘을 더 들여야 하는 이들에게 권력은 나중에 다 바뀔 테니 기다려라 한다. 흐르는 시간과 고이는 시간의 양극화는 차별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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