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수 칼럼] 윤핵관과 김종인, 바뀌는 건 없다
박찬수 | 대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 사이 갈등은 ‘윤핵관’으로 시작해 ‘김종인’으로 끝났다.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당대표가 당무를 중단할 정도로 두 사람의 대립 이유가 얼마나 중대한 것이었는지, 갈등의 원인은 사라진 것인지, 제대로 된 설명은 없다. 지난 주말 윤석열과 이준석의 극적인 울산 회동 직후에 나온 발표는 “김종인씨가 총괄선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뜬금없는 싸움과 화해가 또 있을까 싶다. 그래도 이번 파동이 드러낸 국민의힘의 실상은 의미심장하다. ‘윤핵관’과 ‘김종인’이라는 두 핵심 키워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5년 동안 국민의힘은 변한 게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윤석열 후보 핵심 관계자’의 줄임말인 ‘윤핵관’이 핵심 이슈로 떠오른 건, 당무를 중단하고 지방으로 내려가버린 이준석 대표가 공개적으로 이를 비판하면서부터다. 이준석 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윤핵관을 모른다고 한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달간 ‘윤핵관’이 쑥대밭으로 만드는 동안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고 내용 파악도 못했다면, 후보의 눈과 귀를 막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누군가가 혼돈을 부추기는 상황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새누리당을 혼란스럽게 했던 이른바 ‘친박 핵심 인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오직 측근을 자처하는 이들이 ‘박심’을 말하니까, 친박·진박·종박이란 말이 등장하고 나중엔 ‘진박 감별사’라는 기상천외한 단어까지 언론에 오르내렸던 게 아닌가.
정치 지도자가 자기의 입으로 분명하게 국가 또는 당의 운영이나 선거운동 방향을 말하고 주변을 설득하지 못할 때, ‘윤핵관’이니 ‘진박’이니 하는 모호한 어휘가 정치권을 휘돌아다니게 된다. 이준석 대표는 이를 ‘후보의 눈과 귀를 가린 사람들’ 탓으로 돌렸지만, 누구도 대통령 또는 대통령 후보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없다는 걸 이 대표 스스로가 더 잘 알 터이다. 5년 전 보수 정권의 참담한 실패는 박근혜의 카리스마에 눌린 측근들이 벌벌 떨며 호가호위하는 데만 골몰했기 때문이 아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지도자가 실은 제대로 국정을 이해하거나 이끌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게 실패의 핵심 요인인 것이다. 문제는 측근이 아니라 지도자 자신이다. 정치에 뛰어든 이후 윤석열 후보 주변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윤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뭐가 다른 것일까 궁금해진다. 예리한 칼을 휘두르는 검찰 내부에서 카리스마를 발산한 게, 국민 삶을 책임지고 숱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회 현안을 풀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과연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후보가 모호하니까, 이걸 가리려고 등장한 게 바로 ‘김종인’이다. ‘또 김종인이냐’는 말이 나오긴 해도, 그의 합류는 윤 후보와 국민의힘에 도움이 되리란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 모습은 2012년 대선 때 이미 한번 봤던 것이다. 그때 김종인은 ‘경제민주화’를 박근혜 후보의 간판 공약으로 내세웠고, ‘개발독재 주역의 딸’이란 이미지를 희석하는 데 도움을 줬다. 오죽하면 진보 정치인 노회찬이 “박근혜까지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시대가 됐다”고 탄식했을까 싶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정확히는 취임도 하기 전에 ‘경제민주화’는 폐기됐고, 김종인씨는 나중에 “국민에게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지금 상황은 그때와 다를 게 없다. 김종인은 선대위에 참여하자마자 합리적 이미지의 금태섭과 정태근을 중용하고, ‘공정한 경제’를 내세워 10년 전의 경제민주화론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는 정당이, 김종인 자신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1년 가까이 당을 이끌 때도 실질적 변화를 이뤄내지 못한 정당이 불과 몇달 만에 바뀔 리는 없다. 윤석열 후보가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전두환 대통령이 정치를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고 발언한 건, ‘지도자가 유능할 필요는 없다, 사람만 잘 쓰면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전두환 시대에 얼마나 많은 비인간적 만행이 저질러졌고, ‘인사가 만사’라는 김영삼 대통령 시대에 구제금융 사태를 맞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몇몇 중도개혁 인사들로 외양을 꾸밀 순 있겠지만, 국민의힘은 5년 전 또는 10년 전의 새누리당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윤핵관’과 ‘김종인’이 국민에게 던진 메시지는 이것이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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