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무재해' 사업장도..근로감독관 "사망사고 4건 떠올랐다"

세종=양종곤 기자 2021. 12. 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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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한 제조기업 안전점검 따라가보니
5년간 산업재해 없던, 안전준수 업체였지만
천장크레인 줄 헤지고 지게차 키 꼽힌 채 방치
난간도 없이 '3m 사다리'도.."당장 폐기해야"
8일 충남 A중소기업이 사용 중인 지게차는 키가 꼽힌 채 방치됐었다./양종곤 기자
[서울경제]

"장소와 상황이 비슷했던 4건의 근로자 사망사고가 떠올랐습니다."

8일 충남에 있는 한 제조 중소기업 A사를 불시점검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 소속 이근배 근로감독관이 이 사업장을 살펴본 후 한 말이다. 이 사업장은 근로자 수가 50명 이상으로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대상이다. 하지만 2017년부터 5년간 단 1건의 산업재해 신청도, 이로 인한 근로감독도 없었던 ‘안전한 사업장’이다. 하지만 위험요소는 곳곳에 있었다.

이 감독관이 먼저 발견한 위험요인은 이 기업의 부속 공장에 설치된 호이스트 크레인으로도 불리는 천장 크레인이다. 크레인의 전선을 감은 검정테이프가 심하게 벗겨졌다. 이 크레인 옆에는 화물을 고정하는 줄들이 쌓였는데, 군데군데 검은 기름때가 보였고 끝이 꼬이거나 실밥이 터진 줄도 있었다. 이 감독관은 "이 줄들은 당장 교체해야 한다"며 "이런 상태로 쓰면 줄이 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관이 더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본 것은 지게차다. 지게차는 이 사업장 내 1대뿐이다. 하지만 그는 "공장에 들어올 때 보니 안전벨트를 안하고 운전하던데"라면서 지게차 운전석으로 올라 타더니 꼽혀있던 열쇠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그는 "열쇠를 꼽은 채로 두는 일이 잦은가"라고 회사 관계자에게 물어본 후 직접 안전벨트를 맸다. 이어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장치는 11만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다"고 한 숨을 쉬었다. 지게차는 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설물이다. 특히 지게차는 운전 미숙으로 균형을 잃고 넘어졌을 경우 운전자를 구하기도 어려울 만큼 무겁다. 그는 "사고가 나면 10명이 달라붙어도 지게차를 들어 올리지 못한다"고 지게차를 안전수칙대로 운행하라고 재차 당부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간 이 감독관이 "이건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시설물은 사다리를 임시로 단 작업대다. 3m 남짓한 높이의 이 시설물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형광등에 있는 등을 갈 때 쓴다고 했다. 하지만 사다리를 오르고 내릴 때 짚을 난간도 없었고, 맨 위 작업대 난간도 성인 무릎 높이 정도였다. 사다리도 지게차와 함께 사고가 잦은 시설물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최근 4년 간 사다리에서 추락해 사망한 근로자는 143명이었는데, 사고 유형을 보면 31명이 2미터 이하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8일 천안지청 근로감독관이 A중소기업을 현장점검한 후 점검표를 작성하고 있다./양종곤 기자

공장 뒤편에 있는 지붕은 강풍에 날라간 것처럼 3분의 1 정도 천막이 없었다. 이 감독관은 "몇년 전 지붕공사를 하다가 떨어져 근로자 2명이 사망했다"며 "반드시 전문업체를 통해 보수 작업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외에도 이 사업장에서는 수십개 넘게 쌓여있는 나무 파레트와 화물차가 창고에서 물품을 옮기는 주변의 난간, 근로자들이 쓰는 전열기 뒤편의 배선 등이 지적됐다. 감독관과 현장을 둘러본 회사 관계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고 일일이 지적된 현장을 사진찍고 메모했다. 이 감독관은 "이 곳은프레스와 같이 끼임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장비가 없는 등 위험 요인이 많은 곳이 아니었다"며 "위험시설이 있는 제조업체의 경우 실제 작업자의 동선, 버릇 등까지 체크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불시점검은 고용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의 준비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연 '11차 현장점검의 날'의 일환이다. 이날 고용부는 2,000여곳의 전국 제조업과 건설업 사업장을 살펴봤다. 이달 특별방역점검에 따라 구내식당 등 방역상황에 대한 점검과 마스크 지급이 이뤄졌다. 이날 A사 경영진과 안전보건관리체계에 대해 별도 회의를 연 김규석 고용부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은 "오늘 점검은 어떻게 하면 중대재해법을 잘 준비할 수 있는지 일종의 컨설팅을 해주기 위해 방문한 것"이라며 "중대재해법은 사망사고가 나더라도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잘 구축했는지에 따라 처벌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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