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목적으로 국민감정 자극하는 유혹 빠져서는 안돼"

기자 2021. 12. 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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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전 장관의 9순 기념문집 '공로명과 나-남기고 싶은 외교 비화들'에서 후배 외교관들은 이렇게 그를 기억했다.

공 전 장관은 1958년 외무부에 들어가 38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했는데 그의 이력은 곧 대한민국 외교의 축소판이다.

공 전 장관은 지난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장래전망이 확실치 않던 어두운 시대를 살았는데 지난 70년간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며 평화 시대를 맞게 된 데 안도감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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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 편찬위원장인 유명환 전 장관으로부터 책을 헌정받는 공로명(오른쪽) 전 장관.

9순 기념문집 헌정받은

공로명 前 외무부 장관

“외교부에서 21명의 장관을 겪었지만 애국심, 전문 지식, 상황 판단력, 인품에 영어 실력에 이르기까지 공로명 장관에 필적할 만한 이는 보지 못했다.”(이용준 전 주이탈리아 대사)

“전문성 있는 외교관들이 배척당하는 모습을 볼수록 공 장관의 탄탄한 실력과 경륜, 여유와 자신감, 뚜렷한 국가관과 철학, 조직 장악력이 그립고 아쉽다.”(김숙 전 주유엔 대사)

공 전 장관의 9순 기념문집 ‘공로명과 나-남기고 싶은 외교 비화들’에서 후배 외교관들은 이렇게 그를 기억했다. 공 전 장관은 1958년 외무부에 들어가 38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했는데 그의 이력은 곧 대한민국 외교의 축소판이다. 5·16 쿠데타 후 주 미국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한·미 관계 변화를 워싱턴 현장에서 지켜봤고, 한·일 국교 정상화 후엔 주일본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한·일 관계 실무조율에 참여했다. 1983년 춘천에 불시착한 중공민항기 피랍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중공 측과 협상한 첫 외교관이고, 1990년 소련과 수교협상을 주도한 뒤 초대 주소련 대사도 지냈다. 4강 외교의 달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공 전 장관은 노태우 정부 때 남북핵통제공동위원장으로서 대북협상을 주도했다. 당시 최우진 북한 대표가 6·25는 북침이라는 도발적 발언을 하자 “자다가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는 거냐. 우황청심환 먹고 정신 차려라”고 호통을 친 얘기는 유명하다. 김영삼 정부 때엔 북핵협상 사령탑으로서 대북경수로를 한국형으로 결정하는 뚝심도 발휘했다. 1996년 정권 내 파워 게임에 휘말려 사퇴했지만, 한일포럼 한국 측 회장과 세종재단 이사장등을 지내며 외교계 원로로 활동하고 있다.

공 전 장관은 지난 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장래전망이 확실치 않던 어두운 시대를 살았는데 지난 70년간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며 평화 시대를 맞게 된 데 안도감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안보적 측면에서는 변화된 것이 없어 안타깝다”며 “나라를 지키려면 한·미 동맹과 한·일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시적인 정치 목적으로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당부는 문재인 정부의 반일외교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들렸다. 이 문집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유명환·김성환·윤병세 전 장관 등 51명의 회고담이 실려 사료적 가치도 크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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