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사가 부하 눈치 보는 시대".. '양치기' 양경수 웹툰이 달라졌다
사이다 발언으로 큰 인기 끌었지만
청년 목소리 커지면서 세상도 변화
상사 갑질 대신 육아로 주제 옮겨
웹툰은 잘 쉬고 즐겁게 해주는 것
풋 하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최선
상사 갑질 꼬집어 '사이다' 별칭도
"웹툰은 잘 쉬고 즐겁게 만드는 것
TV 해체한 백남준 거장된 것처럼
자신이 모른다고 가치 없지 않아"
글과 그림에서 상사의 갑질이 사라졌다. 샐러리맨들의 마음을 저격했던 ‘아, 보람 따윈 됐으니 야근 수당이나 주세요’ 같은 작품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직장인들의 사이다'라는 별칭이 이젠 어울리지 않는다. ‘그림왕 양치기’ 양경수(37) 작가의 이야기다.
양 작가는 2016년 일본 작가가 쓴 책 ‘아, 보람 따윈···’에 그린 삽화로 혜성과 같이 대중에 알려졌다. 이후 단행본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 ‘잡(Job)다(多)한 컷’ 드라마 ‘김과장’의 엔딩 삽화 등으로 직장인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웹툰에는 없는 것이 많다. 스토리도 없고 주인공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한 컷의 만화와 대사들. 대신 그 속에 촌철살인을 담았다. 야근을 하는 부하에 보람을 얘기하는 상사에겐 “어디서 X수작을!” “경영자 마인드로 일할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라는 멘트를 날린다. “일찍 퇴근하네”라는 지적에 속으로 “지금이 (밤)9시다”고 외친다. 직장인들은 열광했다.
그랬던 양 작가가 요즘 달라졌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웹툰으로 유명세를 탔을 때의 모습이 아니다. 빈 자리를 차지한 것은 육아. 젖먹이와 어린아이들이 지금 그의 주요 화두다.
7일 서울 영등포동 자택 겸 작업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양 작가는 자신이 변한 이유를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청년들의 목소리가 세지면서 상대적으로 나이 든 세대의 힘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지인들이 말 하더군요. 요즘은 직장 상사들이 부하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고. 시대가 바뀌었다는 거죠. 이젠 모두 힘들고 모두 을(乙)인 세상인 것 같습니다. 모두 다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더 이상 그런 그림을 못 그리겠더라고요." 나이가 든 것도 변화의 이유다. 양 작가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도 다 먹고 살려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세상에 완벽한 답이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양 작가가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불화를 그렸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현대미술과 불교를 접목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국내는 물론 노르웨어·네덜란드·미국 뉴욕 등에서 해외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갑자기 유명세를 타다 보니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방송국에 나가면 젊잖은 척 해야 했고 사이가 틀어진 부친과의 관계도 좋은 척 해야 했다. 불편했다.
웹툰은 이러한 위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들을 웃기고 유행어를 따라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웹툰에 최적화된 성격인 셈이다. 양 작가는 이런 자신을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한 아이"라고 설명했다. 부친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양 작가는 “아버지한테 쓸데없는 짓 말고 공부나 하라고 많이 혼났다. 당신이 모르는 것을 하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라며 “백남준이 어릴 때 TV를 많이 부수지 않았으면 비디오 아트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쓸데없는 생각과 행동이 사실 가장 창조적이고 쓸 데 있는 것들이라는 얘기다.
작품이 성공하면서 그를 찾는 발길도 늘어났다. SNS 이모티콘이 나왔고 ‘양치기 빵’에 음료수, 복권까지 나왔다. 생활도 180도 바뀌었다. 몇 년을 살던 반지하 월셋방을 벗어나 이젠 어엿한 내 집을 갖고 있다. 소위 ‘좀 있다’는 사람들이 모인 엔젤 투자 클럽에 회원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양 작가가 최근 새로운 시도에 푹 빠져 있다.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느끼는 종교와 온라인에서 보는 종교는 많이 다를 것"이라며 “현재 개발자들과 함께 메타부디즘(Meta-Buddism)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양 작가에게 웹툰이 필요한 이유를 물었다. “피식 하는 웃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남는 시간을 잘 쉬고 더 즐겁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잘 쉬어야 일도 잘할 수 있으니까요. 제 웹툰을 보고 ‘풋’ 하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게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아직도 웹툰을 그리는 게 너무 재미있다는 그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sko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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