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몹시 힘겨운 일상회복의 길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1. 12. 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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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3일 서울 송파구보건소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검체 검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섣부르게 시작한 단계적 일상회복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면 폐지해버린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확진자·위중증자·사망자의 수가 모두 수직 상승하고 있다. 자칫 의료 체계의 ‘붕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병상이 동이 나고, 의료진의 피로도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남아공에서 등장한 ‘오미크론’ 변이가 곧바로 유입되고 말았다. ‘후퇴 불가’라는 대통령의 공개적인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단계 시행을 유보시킬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방역패스’에 대한 거부감도 증폭되고 있다.

백신 접종률의 착시

정부가 일상회복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높은 백신 접종률이었다. 우리의 백신 접종은 선진국보다 4개월이나 늦게 시작했지만 그 속도는 놀라운 것이었다. 일상회복을 시작하기 직전인 지난 10월 말에는 전체 인구 5135만 명 중 80.1%가 1차 접종을 끝냈고, 75.3%가 2차 접종도 완료했다. 겉으로는 '집단면역'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작년 12월까지의 역학적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의 기초감염재생산지수(R0값)는 평균 3.4를 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됐다. 백신에만 의존하더라도 접종률이 70%를 넘어서면 된다는 판단이 가능했다.

그런데 정부가 중요한 현실 문제를 간과했다. 백신이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백신의 효과가 100%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백신의 효과성‧지속성은 백신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상식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나라의 연구에서도 충분히 알려져 있었다. 

11월 17일에 공개된 질병관리청 산하의 국립보건연구원의 분석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2회 접종한 경우에 중화항체 생성량은 화이자 백신의 20%, 모더나 백신의 14%에 지나지 않았다. 접종자에게 검출된 중화항체의 지속성도 크게 차이가 났다. 모더나 백신을 2회 접종한 경우에는 2개월이 지나도 중화항체의 74%가 유지되었지만, 화이자는 중화항체가 41%로 줄어들고, 아스트라제네카는 37%로 뚝 떨어져 버렸다. 물론 중화항체의 양만으로는 백신의 효과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백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확인된 셈이다. 실제로 돌파감염의 비율이 백신의 종류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가 백신의 효과성에 대한 분석은 어설픈 것이었다. 돌파감염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60세 이상의 접종자들에 대한 분석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정부는 집단면역에 대한 확실한 과학적 근거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일상회복을 밀어붙였던 셈이다.

백신 접종이 18세 이상의 성인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고려했어야만 했다. 실제로 접종을 실시한 성인의 접종 완료율이 87.6%에 이르렀다. 그러나 5세에서 17세 사이의 464만 명은 지금도 백신의 사각 지대에 놓여있다. 청소년의 접종 완료율은 31.2%에 지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12세에서 15세 사이의 경우에는 13.1%에 불과하다. 5세에서 11세 사이의 321만 명은 백신의 접종 대상에 포함시키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소아‧청소년들에게는 집단면역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소아·청소년들은 코로나19에서 비교적 안전하다는 기대로 무너지고 있다. 10대의 감염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 4주 사이에 10만명 당 감염률이 19세 이상은 76명인데, 18세 이하는 99명이나 된다. 소아·청소년의 발병률이 오히려 더 높은 형편이다. 최근 2주 사이에 확진된 소아·청소년의 99%가 백신 미접종·미완료자이다.

방역 패스에 대한 거부감도 경계해야

뒤늦게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감이 싹트고 있는 것도 걱정스럽다.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방역 패스’에 대한 거부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백신 접종률이 턱없이 낮고, 백신에 의한 이상 증상이 많이 발생하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경우가 그렇다. 정부의 방역패스 도입을 반대하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하고 있다. 방역 패스가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제도라는 인식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포기해버린 탓에 더욱 절박해진 백신의 3차 접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몹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신 접종에 대한 거부감은 정부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지난 4월 백신 접종을 시작할 때는 정부가 백신 접종 이후의 이상 증상을 모두 책임지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했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밝혔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이 시작된 이후에는 정부가 입장을 바꿔버렸다. 이상 증상과 백신 접종 사이의 ‘인과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되는 경우에만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지난 11월 21일 기준으로 이상 반응을 신고한 접종자는 38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접종 8304만건의 0.46%를 차지한다. 그 중 96.4%는 근육통‧두통‧발열‧오한‧메스꺼움 등의 가벼운 증상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3.6%(1만 3687건)는 사정이 달랐다. 그 중에서도 사망 사례가 1003건이나 되었고, 중증이 1240건, 아나팔락시스가 502건이나 되었다. 백신 접종 이후 목숨을 잃은 국민이 코로나19에 의한 사망자의 25%가 넘는 상황은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정부는 인과성 인정에 지나칠 정도로 인색했다. 인과성을 인정해준 경우는 고작 13.9%인 509건이었다. 사망과 증증 이상 반응을 신고한 경우에는 더욱 인색했다. 인과성을 인정해준 사망 사례는 단 2건뿐이었고, 중증도 5건에 지나지 않았다. 사망 6건과 중증 56건은 ‘근거 불충분’으로 평가하고, 3000만 원 이내의 의료비를 지원해주었다. 백신 접종에 의한 이상 반응을 걱정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던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끝내 빈말이 되고 말았다.

정부가 인과성 확인에 성의를 보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국의 자료를 근거로 위원회에서 일괄적‧획일적‧기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고작이다. 개인적인 임상 자료를 검토하는 성의조차 아까워하고 있다. 심지어 이상 증상을 신고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접종자는 ‘과학적 인과성’에 아무 관심이 없다. 오히려 백신 접종 이후에 나타나는 이상 반응은 모두 백신에 의한 것이다. ‘과학적 인과성’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얄팍한 핑계일 뿐이다. 기저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백신 접종으로 기저 질환이 악화되어서 나타나는 이상 반응도 백신의 이상 반응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과학을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일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정부가 이상 반응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상 반응에 대한 정부의 책임 회피가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의 부작용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했던 코로나19 백신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국민의 안전을 강조하는 정부라면 더욱 그래야만 한다.

백신이 훌륭한 방역 수단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백신이 만능일 수는 없다. 에드워드 제너가 처음 발명한 백신으로 천연두를 완전히 박멸하기까지는 무려 18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지난 2년 동안 전 세계 79억의 인구를 공포에 떨게 했던 코로나19를 빛의 속도로 개발한 백신으로 한 숨에 종식시킬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변이도 백신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변이가 전부가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는 일상적인 일이다. 바이러스의 변이에는 어떠한 규칙성이나 방향성도 기대할 수 없다. 그야말로 ‘돌연한 변이’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변이의 ‘전파력은 커지고, 독성은 약해진다’는 주장은 근거를 찾기 어려운 속설일 뿐이다. 오미크론이 코로나 종식을 뜻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인식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런 변이가 보건위생 환경에 열악한 후진국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영국‧미국‧일본에서도 변이가 발생한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는 백신 접종률이 높고, 보건위생 환경이 좋은 선진국에서 오히려 변이 발생을 부추기는 선택압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일상회복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과학’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생존은 책임질 수 없는 감성에 맡겨둘 일이 절대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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