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찾기 힘든 '공소장→비밀'..공수처, 풍전등화 수사하나
기사내용 요약
공수처, 입건 5개월만에 강제수사 나섰지만
초기부터 절차 시비…수원지검 겨냥 논란도
'이성윤 황제면담' 공수처 겨눴던 檢…"보복?"
기소 후 공개된 공소장…"공무상비밀 아니다"
[서울=뉴시스] 김재환 기자 =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총체적 위기에 빠진 모습이다. 이 고검장 수사 초기에만 참여했던 검사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해 논란을 빚었으며, 진상조사에서 유출 의심자로 분류되지 않은 검사들도 겨냥해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있다.
게다가 공소장을 공개하는 행위는 현행 형법상 처벌대상으로 보기 어려운데, '수사' 대상이 되느냐는 근본적 지적까지 나온다. 공수처가 수사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3부(부장검사 최석규)는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로 성명불상의 검찰 관계자를 수사하고 있다.
공수처는 수원지검이 지난 5월 이 고검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긴 뒤, 일부 검찰 관계자가 공소사실 편집본을 언론에 유출한 것으로 의심한다.
지난달 말에는 고발장이 접수돼 입건한 지 6개월 만에 당시 수원지검 수사팀 검사들을 상대로 강제수사에 돌입했지만 곧바로 잡음이 불거졌다.
공수처는 지난달 26일 대검찰청 정보통신과를 압수수색하면서 수사팀 주임인 A검사의 메신저 내역을 살펴봤는데, 절차에 관한 통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영장 집행에 대한 안내문이 당사자에게 늦게 전달된 것인데, 공수처는 절차 위법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고검장 사건의 수사 초기에만 참여하고 기소 당시에는 다른 검찰청에서 근무하던 검사들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해 반발에 직면했다. 임세진 부장검사와 김경목 검사는 당초 이 고검장 사건 수사에 참여했으나 파견연장이 불허되면서 이 고검장을 재판에 넘기기 두 달 전에 원래 근무지로 복귀했다.
이런 점에서 공수처가 법원에 수사대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물론 허위 수사기록으로 영장을 청구한 건 아니라는 게 공수처의 입장이다.
수원지검 수사팀 관계자를 강제수사 대상으로 삼은 것도 오해를 낳는 중이다.
이미 공소장 유출 의혹이 불거진 직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유출 의심자를 밝혀내는 조사가 이뤄졌다. 당시 대검 감찰부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에서 이 고검장 공소장을 열람한 검사들을 파악하고 대상자로부터 휴대전화 등을 제출받아 유출 여부 등을 확인했는데, 수원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수원지검 수사팀 관계자들은 공수처가 자신들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보복수사의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는 중이다.
앞서 수원지검 형사3부는 공수처가 이 고검장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처장 관용차에 태워 청사에 들여왔다는 이른바 '황제면담' 논란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보도자료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수사했다.
수원지검은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진술을 확보해 공수처 관계자들의 혐의점을 구체화한 상황이다. 다만, 지난 6월 검찰 인사로 수사팀이 바뀌었고, 사건이 안양지청으로 재배당되면서 결론이 늦어지는 모양새다.
공수처는 "보복수사 운운은 근거가 없고, 수원지검 수사팀뿐만 아니라 연관이 있는 관련자들을 모두 수사 중"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오해를 피하려 했다면 공수처가 수원지검 수사팀 검사가 아닌, 공소장 유출 대상자에 관한 대검 감찰부의 조사 자료를 먼저 압수수색해야 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공수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사주 및 장모문건 의혹'을 수사하면서 감찰부의 진상조사 자료를 압수수색 방식으로 몇 차례 확보한 바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공수처가 유출자를 찾아내더라도 현행법상 재판에 넘기는 것은 어렵다는 점에서 수사를 계속 진행하는 게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고검장의 공소장 공개가 유출 논란에 휩싸인 건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법무부훈령) 때문이다.
기소가 됐더라도 첫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 공소사실을 공개해선 안 된다는 내용인데, 이를 어겼다고 해서 공수처의 '수사·기소'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형사사법 절차 전자화 촉진법을 위반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으나 이 역시 공수처법상 수사·기소가 불가능하다.
공수처는 수사가 가능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택한 상황인데, 공소장 공개에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형법 126조(피의사실공표죄)의 혐의 인정 기준이 '공소제기 전'이라는 점에서 공소장의 성격을 '비밀'로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수원지검에서 공보 업무를 맡은 강수산나 부장검사는 "공소장은 향후 법정에서 공개될 내용"이라며 "실질적으로 비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거나, 그 누설에 의해 국가의 기능이 위협받는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승영 대전고검 검사도 "공소사실 유출에 의해 국가 기능이 침해돼야 범죄가 성립되는데, 검사는 해당 사건에 대해 종국결정을 했으므로 수사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없다"면서 "담당판사는 기소로 인해 이미 공소장을 제출받았으므로 재판기능의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없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검사도 "첫 재판을 언제 열겠다는 것은 일종의 행정 절차이지, 그 전까지 공소사실을 공개할 수 없다는 법적 효력이 있는 시점은 아니다"라며 "기소가 되면 즉시 재판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게 형사소송법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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