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의 아침] '역사의 주인은 누구인가'..민중 소설가 송기숙 선생 잠들다

지창환 2021. 12. 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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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 리얼리즘 문학 거목 송기숙 선생 영면
-민중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운 소설 '녹두장군' '암태도' 등 남겨
-5.18 도화선 된 1978년 '교육지표' 선언 주도..민주화 운동 헌신
[KBS 광주]

■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프로그램명 : [출발! 무등의 아침]
■ 방송시간 : 12월 8일(수) 08:30∼09:00 KBS광주 1R FM 90.5 MHz
■ 진행 : 지창환 앵커(전 보도국장)
■ 출연 : 박성천 문학전문기자(광주일보/소설가)
■ 구성 : 정유라 작가
■ 기술 : 박나영 감독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주소 https://youtu.be/WCuKxHwJ1u0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출발! 무등의 아침, 지창환입니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소설가 송기숙 선생이 지난 5일 영면에 들었습니다. 고인은 그동안 ‘녹두장군’을 비롯해 ‘암태도’와 ‘오월의 미소’ 등 굵직한 리얼리즘 소설을 발표하면서 지역의 역사와 민중의 생활을 표현했지요. 1978년에는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한 ‘교육 지표’ 선언을 했다가 구속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는데요. 이후 고인에게는 행동 하는 지식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산 교훈을 주신 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 무등의 아침에서는 문학전문기자인 광주일보 박성천 기자 연결해 고인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 있는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저희 방송은 유튜브에서도 실시간으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지창환 앵커 (이하 지창환):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라 불리는 소설가 송기숙 선생이 지난 5일 별세했습니다. 송 교수가 우리에게 남긴 작품과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문학 전문 기자지요. 광주일보 박성천 기자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 광주일보 박성천 기자 (이하 박성천): 안녕하세요?

◇ 지창환: 요즘에 소설 쓰고 계시나요?

◆ 박성천: 바빠서 많이는 못 쓰는데 틈틈이 쓰고는 있습니다.

◇ 지창환: 송기숙 선생님은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 거목이잖아요. 지난 5일 별세하셨는데 어제 발인까지 했잖아요. 송 교수님 어떤 분인지 설명 짧게 해주실까요?


◆ 박성천: 송기숙 선생님 소설가는 1935년에 태어나셨어요. 고향이 장흥입니다. 일제강점기 그다음에 6.25전쟁, 유신체제 그리고 엄혹한 5.18민주화운동 시절을 겪었던,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송기숙 선생님하면 따르는 수식어는 행동하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지창환: 송 선생님이 소설가였잖아요. 송 선생님이 남긴 작품이 꽤 많은 것 같은데 주로 어떤 작품 많이 발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박성천: 일반 독자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녹두장군’이라는 대하소설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소작쟁의를 다뤘던 ‘암태도’, 그다음에 광주 항쟁을 그렸던 ‘오월의 미소’ 그다음에 ‘은내골 기행’ 이런 작품은 많이 알려졌고요. 또 소설집도 ‘백의민족’, ‘도깨비 잔치’, 제목이 상당히 반어적인데 ‘개는 왜 짖는가’와 같은 소설집을 펴내셨어요. 이런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선생님의 창작은 항상 행동과 창작이 병행됐다는 점에서 그런 행동하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선작후행, 작품을 쓰고 행동이 따르거나 또는 선행후작, 행동을 하고 작품이 따르는 이런 언행일치의 삶을 사셨던 정말로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사셨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 지창환: ‘개는 왜 짖는가’ 이런 작품도 무엇인가 뚜렷한 본인의 소신을 표현했던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고. 소설 ‘녹두장군’과 ‘암태도’는 워낙 유명하잖아요. 박 선생님이 보시기에 이 중에 소개해주고 싶은 작품 있습니까? 이런 것은 한번 주목해봐야 된다는 작품.


◆ 박성천: ‘녹두장군’이라는 책은 물론 많은 사람이 읽었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작품이거든요. 녹두장군 하면 전봉준이잖아요. 부패한 봉건사회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송기숙 선생님께서 소설로 형상화한 대표작입니다. 그래서 힘없고 이름 없는 민중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웠지요. 그러면서 역사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아주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특별히 소설 속 전봉준은 당시 탐관오리인 조병갑의 죄상을 폭로하지요. 제폭구민이라는 기치를 듭니다. 포악한 것을 물리치고 백성을 구원한다. 그래서 당시에 일본군과 관군에 맞섰잖아요. 죽창밖에 없었겠지만 사발통문을 돌리고 죽창으로 맞서는 결기를 보였지요. 어떻게 보면 전봉준 장군의 모습이 사실은 책을 읽으면서 그때 당시 송기숙 선생님 같다, 저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또 하나 ‘자랏골의 비가’라는 작품도 상당히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 의식이 있는 작품이지요. 이 작품도 대표작이지만 그 아래 있는 소설들도 전라도 방언을 정말 자유자재로 구사했어요. 송기숙 선생님의 만연체의 특징이 잘 드러난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지창환: 힘없는 민중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웠다. 역사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런 물음표도 던지면서. 전라도 방언도 자유자재로 구사하셨고요. 박 기자님과 송 교수님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인연이 있는지 기억나는 에피소드 있다면 소개해 주시지요.

◆ 박성천: 송기숙 선생님께서 5.18 시민군 수습위원회 활동하다 나중에 해직도 되고 복직을 하셨어요. 문학 강의를 많이 하셨는데 워낙 강의가 인기가 있으니까 저는 타과 학생이었지만 강의를 듣곤 했어요. 강의를 하실 때 보면 대개 열정적이세요. 열정적이고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많으시고. 사실 그때 80년대 당시 수업에서 군사독재 정권을 비판하거나 하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그런 것에 대해서 선생님께서는 주저도 없으셨고. 또 하나 기존에 교과서에서 배웠던 많은 문인들 있잖아요. 그것에 대한 진상을 잘 모르는데 선생님께서는 친일을 했던 문인들에 대해서 실상을 이야기하시면서 이런 분들이 과연 교과서에 등장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말씀도 많이 하셨어요.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쓰고 싶어서 연구실로 찾아가 뵈면 많이 격려를 해주셨던,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글을 쓰고 어떻게 세상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 지창환: 소설만 쓰신 것이 아니고 제자 사랑도 각별했고 강의 하시면서 주저도 없으셨네요. 송 교수님 지칭하는 말이 또 행동하는 지식인이라고 하셨잖아요. 이렇게 된 계기가 70년대 말에 전남대에서 벌어진 교육지표 사건이잖아요. 교육지표 사건 이야기 해볼까요?

◆ 박성천: 1978년이었습니다. 전남대 교수 11명이 ‘우리의 교육지표’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유신 체제였지 않습니까? 유신 체제에서 국민교육헌장 같은 어떻게 보면 국민을 억압하는 그런 내용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을 양심선언처럼 교육지표를 발표했어요. 당시에는 유신 체제기 때문에 긴급조치 9호에 위반이 됐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징역 4년을 받았고 자격 정지도 4년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아시다시피 워낙 국민교육헌장을 통해서 국민을 일일이 간섭하고 억압하고...이에 대해 지성인으로서 대학 교수로서 그것을 묵과할 수 없었겠지요. 당시 그로 인해 청주교도소에 수감됐었고. 나중에 감옥에서 나오셔서 암태도라는 유명한 작품을 집필하시게 된 것입니다.

◇ 지창환: 이 사건이 5.18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잖아요.

◆ 박성천: 맞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물질보다도 사람을 존중해야 된다, 우리 교육이. 결국은 그것으로 인해서 나중에 5.18로 연장이 되는 단초가 되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지창환: 이후에 송 선생님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셨던 것 같고. 그래서 민주화운동 선봉에 서셨잖아요. 문단에 교류하신 분들도 그렇고 같이 사회 운동 하셨던 분들도 그렇고 송 선생님 별세 소식에 다양한 반응을 보이셨을 것 같은데 들으신 것이 있습니까?

◆ 박성천: 장흥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장흥 출신 원로 작가이신 한승원 선생님과 통화를 했어요. 말씀하시다 울컥하시는 느낌을 받았어요. 송기숙 선생님은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지는 작가의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엄혹한 시대에 독재 체제에 항거한 탓에 고문과 투옥을 당했고 아마 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하신 것 같다고 안타까워하신 것 같습니다. 또 한 분은 문순태 선생님, 거의 동년배나 다름없지요. 문 선생님이 서너 살 아래 연배인데 이분은 이런 표현을 하셨어요. 원래 남도는 시문학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그러나 송 교수님 이후로 소설문학의 지형이 폭넓게 넓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족문학의 뿌리를 굳건히 내리신 분이었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 지창환: 시간이 다 돼서 여기서 마무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 박성천: 감사합니다.

◇ 지창환: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광주일보 박성천 문학전문 기자였습니다.

지창환 기자 (2su3sa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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