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연Pic]인생이란 '버티기와 허탈함'..연극 '더 드레서'

강진아 2021. 12. 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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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에 이 공연으로 심신에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의 대표이자 노(老) 배우(선생님)는 연극 '리어왕' 공연을 마친 후 무대에 나와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노 배우의 이상 행동에 스태프들은 공연을 취소하자고 하지만, 노먼은 관객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고 한다.

극단 대표이자 배우로서 노 배우의 상황이나 고민에 이입됐다는 그는 여전한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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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연극 '더 드레서' 공연 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2021.12.08.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에 이 공연으로 심신에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의 대표이자 노(老) 배우(선생님)는 연극 '리어왕' 공연을 마친 후 무대에 나와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폭탄이 터지고 공습이 울리는 2차 세계대전 속에 연극을 무사히 마친 안도감과 함께 자리를 지켜준 관객들에게 감사와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이 말은 2년 넘게 코로나19로 달라진 삶을 살고 있는 현실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내려앉는다.

코로나19 속에 무대를 올렸던 연극 '더 드레서'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배우에 주목해 그의 인생과 철학을 담아낸 국립정동극장의 연극시리즈 첫 번째로 배우 송승환과 함께 지난해 초연을 올렸지만,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도중에 공연이 중단됐다. 그 아쉬움에 올해 다시 공연을 올렸고, 인터미션 없는 100분으로 밀도를 높였다.

"빌어먹을! 대사가 기억나지 않아." 분장실에서 227번째 '리어왕' 공연을 준비하던 중 첫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며 의상 담당자 '노먼'에게 역정 내는 노 배우. 이윽고 대사를 줄줄이 읊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죽느냐 사느냐…' 햄릿부터 오셀로, 맥베스 엉뚱한 연극들이다.

노 배우의 이상 행동에 스태프들은 공연을 취소하자고 하지만, 노먼은 관객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고 한다. 노먼은 선생님을 어르고 달래 분장한 후 무대 뒤편까지 세웠지만, 그는 이내 못하겠다며 주저앉는다. 이 와중에 '광대' 역은 펑크가 나 다른 스태프가 맡고, 적색경보와 굉음이 이어지며 긴장감을 높인다.

[서울=뉴시스]연극 '더 드레서' 공연 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2021.12.08. photo@newsis.com

극중극 형태로 이뤄진 극은 분장실과 무대 뒤편을 보여주며 생각을 전환시킨다. 오늘 밤 극장을 찾아온 관객들을 위해 무대 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면서도 응원하게 된다. 우리는 늘 완성된 무대만을 보지만,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

극은 그 어떤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예술은 살아남았음'을 말한다. 전쟁으로 공연장들이 불타고, 젊은 배우들은 전장으로 향했지만 그럼에도 무대는 계속돼야 했다. 무대는 그들만의 전쟁터다. "버티고 견뎌내야 해!" 노 배우의 거듭되는 외침이 채찍질 된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난타' 제작자이자 배우인 송승환(오른쪽) PMC프러덕션 예술총감독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린 2021 국립정동극장 연극시리즈 '더 드레서'(THE DRESSER)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시연되고 있다. 2021.11.22. pak7130@newsis.com

영화 '피아니스트' 작가로 유명한 로널드 하우드의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지난해 9년 만에 연극에 복귀한 송승환이 직접 선택했다. 극단 대표이자 배우로서 노 배우의 상황이나 고민에 이입됐다는 그는 여전한 에너지로 무대를 장악한다.

늙은 배우라고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은 아니다. 소리를 지르고 생떼를 부리는 꼬장꼬장한 모습부터 외로워하며 곁의 손길을 바라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모습까지 완벽히 소화해낸다.

[서울=뉴시스]연극 '더 드레서' 공연 사진. (사진=국립정동극장 제공) 2021.12.08. photo@newsis.com

'더 드레서'는 노 배우와 노먼의 대화를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지만, 황혼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노 배우의 곁에서 16년간 정성스레 그를 돌봐온 노먼의 마지막 허탈감은 관객들에게 또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라고 했던 노 배우의 마지막 일기장을 집어 든 노먼은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 사이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자신의 이름에 점차 붉으락푸르락 표정이 변한다.

어느새 잠에 든듯 미동하지 않는 노 배우에게 이제는 물을 수도 없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거"라고 했던 노먼은 버텨온 세월의 허망함에 울부짖는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최선의 끝에, 자신의 존재 가치와 미래를 다시금 직면하는 노먼은 우리의 또다른 모습 같다. 정동극장에서 내년 1월1일까지 공연한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배우 송승환, 오만석, 김다현, 정재은, 양소민, 임영우, 이주원, 유병훈, 송영재가 16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연극 '더 드레서'(THE DRESSER) 프레스콜을 마치고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더 드레서'는 로널드 하우드의 희곡 더 드레서(THE DRESSER)를 원작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을 중심으로 리어왕 공연을 앞두고 벌어지는 노배우와 그의 드레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2021.11.16. pak7130@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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