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 불안 [메디칼럼 (9)]

2021. 12. 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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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2차 접종) 비율이 80%(12월 1일 기준)를 넘어섰다. 코로나19 백신을 의학적인 이유로 못 맞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맞은 것 같다. 내가 보는 이식 환자 중에서는 벌써 3차 부스터샷(추가 접종)까지 맞은 분들도 있다. 백신 수급이 더 빨랐다면 우리 행정 시스템상 더 이른 시기에 백신 완료율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백신의 부작용이 두려워 맞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의사들 가운데에서도 인터넷상에서 불안을 조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대로 된 임상시험 없이 졸속으로 백신이 개발됐다면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기심에 의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시험대상이 되고 있으며, 코로나19도 비타민 등을 잘 먹으면 쉽게 이겨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퍼뜨리고 있다. 참 무책임한 말에 분노를 느꼈다. 내가 “왜 세계보건기구(WHO)나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의학 저널 ‘NEJM’에 나오는 논문을 믿지 않고, 코로나19 확진자를 보지도 않는 당신 같은 음모론자의 말을 신뢰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바로 나를 차단해버렸다. 본인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는 확증편향의 시대를 잘 살아가는 사람인가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확률 낮다는 것 알지만 이해는 돼

이와는 별개로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온갖 부작용이 나타났던 이야기와 심각한 질환으로 사망까지 이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 백신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는 것은 정말 마음속 깊이 이해가 된다. 나도 머리로는 확률이 낮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한 공포와 불안을 벗어날 수 없는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막 외과전문의가 됐을 때 난 군의관 대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국제협력의사를 지원했다. 당시 갈 수 있는 나라가 몇군데 있었다. 이왕이면 멀리 아프리카에 가고 싶어 에티오피아를 지원했다. 2년 반 정도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시립병원에서 근무했다. 이 병원은 거의 무료로 환자를 치료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가난한 나라인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오는 병원이었다. 내가 그 병원에 있을 당시만 해도 전신마취가 필요한 환자의 수술 대기 시간이 무려 2년이 넘어갈 만큼 형편이 열악했다. 난 그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열심히 수술을 하며 노력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인구의 약 8%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앓고 있었다. 수술받는 사람 중에서도 꽤 많은 사람이 AIDS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매우 긴장하면서 수술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것도 무덤덤해졌다. 한국에서도 AIDS 환자 수술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바늘에 뚫리지 않는 특수한 장갑과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수술했다. 한국에서 수술할 때는 사실 전 수술실이 긴장 상태였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워낙 환자들이 많다 보니 뭐 그런 것도 없었다. 그저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다만 조금 더 조심해 수술할 뿐이었다.

사건은 늘 긴장이 풀어지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어느 환자를 수술하고 나서 배를 닫다가 수술용 바늘로 그만 내 손가락을 살짝 찌르고 말았다. 수술이 끝나고 환자의 차트를 확인하다 보니 바로 AIDS 바이러스 감염자였다. 그 당시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동료 현지 외과 의사들이 본인은 수십 번도 더 찔려봤다면서 위로를 해주고, 실제로 이렇게 바늘에 의해 감염되는 확률이 0.3% 이하라는 이야기를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별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백신은 위드 코로나 시대 불가피한 선택

그 당시만큼 AIDS의 의인성 감염(iatrogenic infection)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시의 느린 에티오피아 인터넷을 통해 온갖 논문을 찾아보고 WHO 홈페이지까지 접속해 살펴봤다. 10년이 넘어 이제는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WHO는 홈페이지에 전 세계의 의인성 AIDS 감염증 사례에 대해 다 모아 놓았는데, 모든 사례를 봐도 수술용 바늘에 의해 감염된 케이스는 없었다. 다만 AIDS 환자를 부검하다가 수술용 메스로 본인 손을 베어 감염된 케이스는 있었다. 0.3%라는 확률도 피가 어느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주사기용 바늘에 의한 감염이지, 피가 묻어 있지 않은 봉합용 수술바늘에 의해서는 감염될 확률 자체가 매우 낮았다. 그리고 0.3%라는 확률도 미국의 데이터였는데 당시 미국의 에이즈 감염률이 0.25%였다. 어떤 의료인이 새롭게 감염됐다고 해서 그게 의인성 감염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미있는 논문도 있었다. 스펀지를 사람 손 모양으로 만든 다음 장갑을 한개 끼웠을 때와 두개를 끼웠을 때 바늘에 잉크를 묻히고 장갑을 뚫어 스펀지에 얼마나 많은 양의 액체가 전달되는지 실험을 한 논문이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항상 장갑을 두개 끼고 수술을 했는데, 장갑을 두개 꼈을 경우는 실제로 바늘이 피부를 뚫고 전달될 수 있는 피의 양이 극미량이었다. 그리고 AIDS 양성환자라고 하더라도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면역이 유지되는 환자였기 때문에 그런 환자들의 피 속에는 AIDS 바이러스 자체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사실상 내가 의인성 감염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있는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예방적으로 AIDS 치료약 한가지를 한달 정도 먹었다. 부작용이 많다고 알고 있었는데, 먹고도 별다른 부작용이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인도산 짝퉁이라 그런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불안은 줄어들긴 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귀국해 건강검진 후에 음성인 것을 확인한 후인 듯하다. 그래서 나는 코로나19 백신이 무서워 맞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어쩌면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자기 일처럼 공감을 더 잘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성으로 판단해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기를 바란다. 이런 분들의 불안과 공포가 결국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것으로 결정하게끔 한다면, 그리고 ‘위드 코로나’ 시대에 결국 코로나19를 한번은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백신을 맞지 않은 채 만나는 코로나19는 정말 이유 ‘있는’ 불안과 공포를 가져다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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