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의 스포츠 읽기] 운동은 공부가 아닌가요?

김양희 2021. 12.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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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의 스포츠 읽기]

픽사베이.

미국 연수 때의 일이다. 영어 공부를 도와주던 제임스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에 갓 입학한 새내기 학생이었다. 제임스에게 고교 시절 스포츠 활동이 어땠는지 물은 적이 있다. 제임스는 의무적으로 스포츠 종목 중 하나를 골라 1년 내내 수업을 들어야 했고 자신은 산악자전거를 배웠다고 했다. 그가 택할 수 있는 종목은 야구부터 축구, 미식축구, 라크로스 등 종목이 다양했다고도 덧붙였다.

요즘 들어 제임스의 얘기가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것은 교육부가 학생선수 대회 훈련 참가 허용일수 축소를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문화체육부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에 따라 대회와 훈련 참가를 위한 출석 인정 결석 허용 일수를 현재 초등학교 10일, 중학교 15일, 고등학교 30일에서 내년 초등학교는 0일, 중학교 10일, 고등학교 20일로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대로 확정이 된다면 2023년부터는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 학생선수도 대회 참가나 훈련을 위해 단 하루도 학교를 빠질 수 없다. 이에 대한체육회와 산하 68개 경기단체연합회 등 체육단체들은 최근 공동 성명을 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학생선수는 학생인가, 선수인가라는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2016년 최순실 사태로 말미암은 정유라(승마) 건이 터지면서 체육 특기생에 대해 더 안 좋은 시선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도박, 폭력, 음주운전 등 스포츠 선수들의 도덕성, 인성 문제가 재차 도마 위에 오르자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라는 인식 또한 팽배해졌다. 선수이기에 앞서 학생이기에 학습권을 보장(이라 쓰고 강제하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이유다.

현장에서는 학습권과 함께 운동권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한 고교 야구부 감독은 “일정 훈련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면 팀당 선수 수를 30~40명으로 봤을 때 개인 평균 훈련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부족한 훈련량을 메우기 위해 선수들은 사설 레슨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선수들도 일반 학생들처럼 꿈과 희망을 갖고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 것인데 체육 특기생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고 일갈했다. 학교 내 훈련 시간이 턱없이 줄어들면서 야구를 비롯한 단체 종목은 사설 학원 붐이 일었고 야구의 경우 한 달 최소 200만원 이상의 레슨비를 지불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선수 학부모들도 불만이 쌓이기는 마찬가지다. 중학교 3학년 야구 선수를 둔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주 중에 수업을 전부 들으면 주말에는 운동에만 매달려야 한다. 학생선수는 쉴 시간이 전혀 없어진다”고 항변했다. 주 52시간 근무 체제로 주말 훈련을 부탁할 경우 지도자들에게 시간외근무수당 등도 따로 지급해야만 한다. 학부모들이 갹출해 감독, 코치 월급을 주고 있는 현실에서 이는 또 다른 경제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탁구 신동’으로 불리는 신유빈(17)의 경우 고교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실업팀으로 직행했다. 혁신위 권고처럼 된다면 개인 종목에서는 신유빈과 같은 선택을 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 자명하다. 단체 종목의 경우 사교육을 부추겨 재능이 있는데도 경제 사정 때문에 운동을 중도 포기하는 선수들이 나올 수 있다.

제도적으로 학생선수라는 본분을 지킬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교과 과정에서 체육 교육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빈약한 시설 등의 이유로 스포츠 클럽 활동이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학생선수에게 무조건 학습권만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클럽 활동 활성화라는 대안 또한 한국 입시 현실에서 체육 활동이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등에 반영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관련 제도를 서둘러 고치면 빈틈이 많이 생긴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 다시 제도를 고치다 보면 결국에는 이도 저도 아닌 누더기 제도가 되고 만다. 그 와중에 피해를 보는 것은 꿈을 좇아 운동을 택한 아이들이 될 것이다.

앉아서 하는 공부만이 학습일 수는 없다. 학생선수에게 운동은 꿈을 향해 가는 또 다른 학습이다. 학생선수에게 꼭 필요한 교육을 위한 커리큘럼 등이 마련된 뒤 제도를 고쳐도 늦지는 않다.

김양희 스포츠 팀장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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