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총격과 반복된 외양간 고치기
[경향신문]
매디신 볼드윈(17)은 올해 고등학교 졸업반으로 이미 대학 몇 곳에서 전액 장학금과 함께 입학 통지를 받았다. 테이트 마이어(16)는 미식축구팀 주전 선수로 운동에 소질을 보였으며 학업 성적도 우등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헤나 줄리아나(14)는 고교 신입생으로 학교 농구부 경기에 처음 출전할 예정이었다. 저스틴 실링(17) 역시 졸업반으로 내년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며, 방과 후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미국 미시간주 옥스퍼드 고등학교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 학교 재학생 이선 크럼블리(15)가 일으킨 총기난사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4명의 청소년이다. 미국 언론들은 비명횡사한 젊은이들의 인생을 몇 문장씩 짤막하게 소개하는 데 그쳤지만, 어처구니없는 총기난사 사건은 4개의 우주를 또다시 이 세상에서 가뭇없이 지워버렸다. 이 사건으로 부상을 당한 7명도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역사적·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총기 소유 및 규제에 관한 미국인들의 분열적 태도이다. 미국은 수정헌법 2조를 통해 개인의 총기 소유 및 휴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정부가 총기 소유를 금지하거나 과도하게 제약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그렇지만 각각의 주와 시민들이 스스로를 지킬 무력이 필요했던 미국 건국 초기와 달리 현대로 접어들면서 대량살상이 가능한 총기들이 등장했고, 더구나 무고한 시민들이 거의 매일 죽어나가는 현실에 대비하면 극과 극을 달리는 총기 소유와 규제에 관한 미국인의 여론은 의아할 뿐이다. 미국 ‘총기폭력아카이브’에 따르면 4명 이상 죽거나 다친 총기난사 사건은 올해 들어서만 657건이나 발생했다.
물론 학교에서 점심시간 끝 무렵 다음 수업을 위해 이동하던 청소년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번 사건에 대해선 애도가 넘쳐난다. 특히 총격범의 부모가 아들에게 반자동 권총을 사실상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고, 총을 열쇠로 잠그지 않은 서랍에 보관했으며,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도 예방 조치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17명이 묵숨을 잃은 2018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트라우마를 떠올린다. 그리고 분노와 애도는 총기규제 강화 여론으로 이어진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파크랜드 참사 직후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은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67%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올해는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난 10년 사이 가장 낮은 52%로 떨어졌다.
익숙한 패턴이다. 안타깝게도 옥스퍼드 고교 참사의 충격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조만간 희미해질 것이고,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은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와 진보 등 정치적 이념에 따라 팽팽하게 맞서는 균형을 되찾을 것이다. 신원조회를 강화해 전과자 또는 정신질환자 등 총기를 소유하면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걸러내자는 합리적인 주장마저 번번이 무산되는 배경이다. 미국은 소를 잃은 다음 외양간을 고치자고 다짐하고, 다시 소를 잃어버리는 현상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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