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본수당과 오징어 게임
[경향신문]
이재명 후보가 재난지원금 기본소득 주장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게다가 선대위 재구성 문제로 포퓰리즘이라는 주장이 비등하면서 심지어는 민주당 내에서까지 도려내야 될 적폐라는 심한 말까지 나와 분당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똑같이 나눠준다는 이유 때문인지 보수의 중심 대구에선 빨갱이란 말도 들린다고 한다. 그러니 한 발자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는데 과연 기본수당은 포퓰리즘인가!
30여년 전인 1985년 10월, 독일 베를린에서 가난한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 아내가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다. 주말이나 방학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 생각을 하고 갔는데 어학코스 학생은 연중 겨우 3개월만 가능했다. 통장엔 6개월 생활비밖에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아이까지 생겼으니 청천벽력이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베를린 한인 성당에서 만난 카리타스 재단의 한 수녀님이 이 사실을 건네듣고 내게 임신 증명서와 통장 잔액증명서를 떼어 달라고 전화를 했다. 놀랍게도 일주일 만에 당시로는 무려 10개월치 생활비인 5300마르크가 통장에 들어왔다. 다음해 첫아이를 낳으니 매월 600마르크나 되는 아이 양육비가 2년 동안이나 추가로 지급되기 시작했다. 독일은 대학 학비가 아예 없고 생활비도 정부에서 매달 지원하는 바펙(BAfoeG)으로 해결해준다. 그러니 자녀의 결혼비용과 집장만까지 걱정해야 하는 한국 부모들과는 달리 독일 부모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자식 걱정에서 해방된다. 독일의 아비투어는 고교 졸업시험이면서 동시에 대학 수학능력 자격시험이다. 의대 등 지원자가 많은 여섯 개 학과만 입학생 수를 제한하는데 수용가능 인원을 넘을 경우 20%는 아비투어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배정되고, 20%는 입학 대기자에게 돌아가 대기할수록 점수가 높아져 웬만하면 의대도 2~3년 정도 대기하면 들어갈 수 있다. 나머지 60%는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선발해 일반 학과는 아비투어 성적표와 지원서를 제출하면 대체로 입학허가를 받을 수 있다.
독일 학생들은 의료보험비도 연간 몇만원 안 내 첫아이를 돈 걱정 없이 순산해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었다. 몇개월 뒤 어학시험에 통과해 정식 학생으로 등록이 되었고 다음해부터 연구실에서 일을 시작하자 매월 1500마르크나 되는 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박사학위 실험도 순조롭게 진행돼 3년도 안 돼 학위논문을 마치고 1989년 1학기부터는 귀국해 호서대 강단에 서게 되었다. 여유로운 독일 유학생활 동안 모인 돈이 2000만원을 넘어 천안에 작은 아파트도 장만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 대학을 졸업해도 절반은 계약직으로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졸업 후에도 몇년씩 이용만 당하다 퇴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헬지옥이고 목숨을 건 오징어 게임 속 ‘머니좀비’가 돼버려 결혼 꿈은 접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파트값 폭등으로 우왕좌왕 대책만 남발하다 오히려 더 악화시킨 문재인 정부로 책임이 다 전가돼버렸다. 정부 초기에 미국이나 일본처럼 임대업을 양성화시키기 위해 다주택자들에게 혜택을 주었던 문재인 정부도 책임을 면치 못하겠지만 강남3구 부동산 규제는 물론 분양가 상한제까지 확 풀었던 이명박 정부와 영리를 추구할 수 있도록 임대 사업자들에게 세제 특혜를 주었던 박근혜 정부도 다 아파트 폭등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갑자기 코로나19가 쓰나미처럼 몰려오자 갈 곳을 잃은 뭉칫돈이 규제가 다 풀린 아파트에 몰려 생긴 일로 다른 나라들도 부동산이 급등하는 등 유사한 상황을 겪고 있다.
최근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한국에서 아이를 낳는다면 바보다’라고 꼬집었다. 4차산업혁명으로 점점 일자리가 줄어들 텐데 국민의 최저 생활보장을 위한 기본수당은 포기했지만 기왕 시작했던 일은 포기하지 말고 장기 계획을 세워 우선 독일처럼 청년들이 누구나 가정의 꿈을 쉽게 실현시킬 수 있도록 복지의 큰 그림을 그려보자.
우선 대학도 교실이 남아도니 어려운 사립들을 통폐합해 국립화시키고 학비도 이참에 아예 없애 버리자. 또한 졸업 후 비정규직을 불법화시키고 아이 양육 지원 정책도 과감히 확대하자. 신혼부부에게 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한 반값 아파트 분양권을 우선 제공해주고 아이들 유치원비도 지원해주자. 이젠 우리나라도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성장률에만 연연해 기업 특혜 위주의 경제성장정책을 펼치는 것에서 벗어나 청년들이 오징어 게임 지옥을 빠져나와 행복한 가정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가 행복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이기영 | 초록교육연대 공동대표 호서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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