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은 인류에 대한 경고 작은 생명의 움직임 속에서 세계의 변화 읽을 수 있어야" [나의 삶 나의 길]

김용출 2021. 12. 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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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나비가 돌아왔다' 이시영
시업 50년.. 4년 만에 신작 시집 펴내
원래 세계란 서로 연결되어 있던 것
작은 것도 가볍게 보지 말라는 교훈
짧지만 통렬한 인식·준엄한 메시지
삶의 현장서 만난 깨달음·사색 담겨
시란 자기반성·자기울림 전해주는 양식
열정 갖되, 삿됨 없는 순수한 시업 몰두
시인이란 만상의 소리를 깊게 듣는 것
오늘도 귀를 쫑긋 세우고 세상 속으로
인간이 자연을 덜 괴롭히니까 생명체가 돌아오는구나, 이제 나비가 돌아오는 세계가 됐구나.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뒤흔들던 지난해 봄, 매일 한강변을 산책하던 시인 이시영의 얼굴에 기쁨의 표정이 잠깐 스쳐갔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연약하고 작은 나비 한 마리가 눈앞의 풀 사이를 날아가고 있었다.

“강변에 나비가 돌아왔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저것은 세계가 변하는 일이다”(‘나비가 돌아왔다’ 전문)

나비 한 마리가 돌아오는 일이 어떻게 세계가 변하는 일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세계란 원래 서로 연결돼 있지 않던가. 결국 시는 세계의 변화란 미세한 움직임으로부터 시작하기에 작고 사소한 존재라도 결코 가볍게 보지 마라는 천둥 같은 의미를 담았다.

“인도 뉴델리에서 공장 가동을 일주일 정도 멈췄더니 히말리야산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금년에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미세먼지가 드문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자연을 그만 좀 괴롭히라고 인류에 주는 경고 같아요. 작고 사소한 것들, 어떤 미세한 움직임에서 세계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인식을 표현한 시죠. 작은 생명의 움직임 속에서 세계의 변화를 읽어야 합니다.”

1969년 등단한 이래 50년 넘게 꾸준히 시업(詩業)에 매진해온 일흔둘의 시인 이시영이 ‘나비가 돌아왔다’를 표제로 4년 만에 신작 시집(문학과지성사)을 들고 돌아왔다.
몇 해 전 수술을 받는 등 어려운 시절을 넘어온 이시영 시인은 15번째 신작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이 시집의 시들은 내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쓰여진 것들이다. 몸과 마음이 기진했을 때 시를 떠올리곤 했다”고 말한다. ‘조용히 시업에만 매진했다’는 평을 좋아한다는 그는 세상을 뜨겁게 사랑하되 삿됨 없이 시업에만 매진하길 소망한다. 이재문 기자
1970, 80년대에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23년간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에 종사했으며, 4년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문단의 가운데에 있었지만, 그가 늘 서 있었던 곳은 본질적으로 시의 자리, 시인의 자리였다. 대표시 ‘정님이’를 담은 첫 시집 ‘만월’을 1976년 펴낸 이래 이번 시집까지 15권의 시집을 꾸준히 펴낸 게 이를 웅변한다.

시인 이시영은 어떻게 반세기 이상 시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시업에만 매진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 시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살이 찌지 않는 늘씬한 체형에 트렌치코트가 잘 어울리는 이 시인을, 지난달 17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살아온 삶처럼, 말 역시 분명했다.

그의 이번 시집에는 세상과 생활의 파편 속에서 건져 올린, 짧지만 통렬한 세계 인식과 준엄한 메시지를 담은 시편들이 많다. ‘수평’은 참새 날갯짓의 의미를 놀랍게 지구적으로 확대한 시편이다.

“참새 한 마리가 내려앉자 가지가 휘청하면서 파르르 떨더니/ 이내 지구의 중심을 바로잡는다”(‘수평’ 전문)
―시 ‘수평’은 어떻게 온 것인가.

“지난해 가을쯤 아파트를 산책하고 있는데, 참새가 나뭇가지에 앉으니 가지가 휘청했다. 새는 파르르 떨면서 숨을 고르듯이 반듯이 서더라. 반대로 생각하면 지구가 새의 다리를 잡는 것 같은 느낌의 활력이 느껴졌다.”

스스로 가장 애착이 간다는 시 ‘삼월’도 엇비슷하다, 문득. “저 삼월의 따스한 하늘가에 문득 고개를 묻고 돌아보는 딱새 한 마리”(‘삼월’ 전문)

―이미지가 선명하면서도 역동성까지 주는, 묘한 감각을 주는데.

“지난해 3월 어느 날, 딱새 한 마리가 하늘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봤다. 딱새와 따스한 하늘이 일치가 되는 느낌이 왔다. 문득이라는 형용사가 중요한데, 문득 고개를 묻고 돌아보는 그 장면이 굉장한 에너지 같은 것을 주더라. 그런 느낌을 표현했다. 비평 용어로 말하면, 감정도 아니고 느낌도 아니고 무드도 아닌 정동(情動·Affect), 감정의 활력 같은 것이 순간적으로 느껴져서 기록한 것이다.”

삶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얻은 깨달음이나 사색도 적지 않게 담겨 있는데, 그게 또 만만치 않다. 수덕사 고승이 들려주는 죽음 이야기는 담담해서 오히려 깊은 여운을 줄지도.

“수덕사의 높은 산방에서 이 절의 방장 설정 스님은 이국에서 온 작가들에게 ‘제 스승은 100세 열반에 드셨는데 그날 아침에도 ‘지금이 몇 시냐’고 물으셔서 ‘8시입니다’ 했더니 ‘알았다’고 말씀하시고는 잠깐 뜰아래를 내려다보시고는 바로 돌아가셨다’며, 대체 죽음이란 이처럼 문을 열고 나가듯이 조용히 맞이하는 것이라며 그의 곁에 다가선 푸른 눈들을 향해 조용히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문을 열다’ 전문)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가 단아하다.

“언젠가 외국 작가들과 함께 고승을 많이 배출한 유서 깊은 절 수덕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니까, 방장이던 설정 스님이 자신의 스승이 열반하던 모습을 들려주더라. 죽음이란 요란하게 맞을 게 아니라며. 요즘은 자연스런 죽음이 불가능하다. 병원에서 기계에 의지하고 연명해서 생을 마감한다. 자연스런 죽음이 사라진 시대에 대한 제 나름의 명상을 기록한 것이다.”

말을 타고 몽골 초원을 달리는 몽골인들이 자신들의 주식인 양 앞에서 보여주는 생명 존중의 마음도 예민하게 포착했다. 양을 죽일 때조차 연민의 마음을 잃지 않는 그들의.

“어린 양들이 주인의 품에 안기는 순간, 자신의 목숨이 다했음을 알고 간절한 눈빛을 보낸다고 한다. 그러나 주인은 숨겼던 마치를 꺼내 단숨에 가격하여 그 눈을 조용히 감겨준다”(‘테렐지 숲에서’ 전문)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시라는 것이, 소통불능이면서 주체하지 못한 자기감정을 낯설게 드러내는 게 아니라,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한 자기반성이나 자기 울림, 조용한 서정을 전해주는 양식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1949년 구례에서 태어난 이시영은 대학 2학년 때이던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잡지 ‘월간문학’의 제3회 신인작품 공모에 시가 각각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등단 이후, 그는 시집으로 ‘만월’(1976), ‘바람 속으로’(1986), ‘길은 멀다 친구여’(1988), ‘이슬 맺힌 노래’(1991) 등을, 시선집으로 ‘긴 노래, 짧은 시’(2009) 등을 펴냈다. 그 사이, 만해문학상과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지훈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임화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시 세계를 설명해 달라.

“크게 보면 역사가 담긴 증언시를 비롯한 서사시의 세계와 짧은 서정시의 세계 사이를 왔다갔다하거나 교차하면서 시 세계를 펼쳐온 것 같다. 시기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초기부터 민주화가 되기 전까지는 참여시를 더 많이 썼고, 민주화 이후 네 번째 시집 ‘이슬 맺힌 노래’부터는 서정시를 더 많이 쓴 것 같다.”

특히 첫 시집 ‘만월’에 실린 시 ‘정님이’는 그의 초기를 대표하는 시이자,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그의 대표시이기도 하다.

“용산 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 이마의 흉터를 가린 긴 머리, 날랜 발/ 학교도 못 다녔으면서/ 운동회 때만 되면 나보다 더 좋아라 좋아라/ 머슴 만득이 지게에서 점심을 빼앗아 이고 달려오던 누나”(‘정님이’ 부문)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정님이’는 누구인가.

“나보다 서너 살 위인 정님이 누나는 6·25전쟁 당시 지리산간 마을을 불태운 동계작전 직후에 갈 데가 없어서 우리 집에서 부엌일을 봐주고 아이들을 키워준 젊은 식모였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정이 많아서 혈육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누나는 이후 서울로 올라와서 직장에 다니다가 용산 홍등가에서 일하게 됐다. 1960, 70년대 박정희 시대에는 시골에서 식모로 일한 여성들이 서울로 올라가서 여공이 됐다가 다시 홍등가로 떨어진 경우가 많았는데, 시 속에는 바로 그런 산업화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시인은 1974년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문인선언에 참여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등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이다가 여러 차례 연행됐다. 1980년부터 23년간 창작과비평사에서 편집장, 주간, 부사장 등으로 일했고, 주간 시절인 1989년 황석영의 북한 방문기를 게재했다가 옥고를 치러야 했다. 2006년부터 단국대 문창과 초빙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다.
―지금까지 15권의 시집을 펴냈는데, 시 창작의 원동력이나 방법, 비결은 무엇인가.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열정, 아울러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특히 순수해야지, 사리사욕에 차서는 안 된다. 공자가 사무사(思毋邪)라고 했는데, 생각함에 삿됨이 없어야 한다. 삿됨이 없는 순수한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세상을 뜨겁게 사랑하되, 삿됨이 없어야 한다. 아울러 경청할 줄 알아야 하고, 스스로 반성도 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시인,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지.

“저는 베스트셀러 시인이 된 적도 없고, 요란하게 하지도 않았다. 열정을 간직하되, 삿됨이 없이 순수한 서정시를 쓰며 50년간 시업에만 몰두했다. 조용히 시업에 매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에게 시인에게 진정한 시인이란 만상의 소리를 깊이 있게 들어야 하고, 또 들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람쥐의 제재 바른 발자국 소리도, 야훼의 노한 음성도 들을 줄 아는.
“좋은 시인이란 어쩌면 듣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깊은 산 삭풍에 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놀라서 달음박질치는 다람쥐의 제재 바른 발자국 소리도 조심조심 들을 수 있다/ 때론 벼락처럼 첨탑 높은 교회당을 때리는 야훼의 노한 음성도/ 어릴 적 볏짚 담 너머 키 작은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좋은 시인이란 그러므로 귀가 쫑긋 솟은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잉크병 얼어붙은 겨울밤 곱은 손 불며/ 이 모든 소리를 백지 위에 철필로 꾹꾹 눌러쓸 것이다”(‘듣는 사람’ 전문)

시인 이시영은 오늘도 귀를 쫑긋 세우고 예민하게 듣고 있을지 모른다. 세상과 삶의 순간에서, 현장에서 영원한 그 무엇을 포착하기 위해. 마포나루에서, 한강변에서, 백두산 천지에서, 몽골 평원에서…. 그리하여 창백한 푸른 점에서 고독하게. 나의 마음에서도, 당신의 심장에서도.

시인 이시영은… ●1949년 구례 출생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월간문학’ 신인작품공모에 시가 각각 당선돼 작품 활동 ●‘만월’, ‘바람 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이슬 맺힌 노래’ 등 시집 15권 출간, 산문집 ‘곧 수풀이 베어지리라’ 등 출간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지훈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임화문학상 등 다수 수상 ●창작과비평사에서 23년 근무하며 편집장, 주간, 부사장 등 역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역임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초빙교수 재직 중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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