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공격, 우린 '오셀로'일까 '이아고'일까 [한국의 창(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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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예상은 빗나갔다.
올해 초 언론에서 이번 대선은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맞설 경우 제대로 된 정책 선거가 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소수자가 표적이 될 경우 훨씬 눈에 띄고 다수자의 지지에 편승해 공격의 가혹성은 배가된다.
우리는 이아고인가? 오셀로인가? 아니면 이 비극의 막을 내릴 연출자인가? 선거가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 있는 수단이 되려면 공격은 멈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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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정치인 향한 무차별 폭로전 도 넘어
다수에 편승한 지속적 인권침해 논란
민주주의 원칙 프라이버시 보장돼야
이번에도 예상은 빗나갔다. 올해 초 언론에서 이번 대선은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맞설 경우 제대로 된 정책 선거가 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자들 사이에서 떠돈다는 희망 섞인 예측 내지 기대였다. 두 후보 모두 법적·도덕적 논쟁을 불러올 리스크가 적지 않기에 사생활이나 개인적 주변사 대신 정책 경쟁에 힘을 쏟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은 지금 그런 희망은 거두는 편이 나을 듯하다.
이번 선거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후보들 못지않은 주변 인사들에 대한 공격이다. 특히 캠프와 관련된 여성 인물들에 대한 폭로전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거침없이 무너뜨리며 우리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유형무형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신상 털기식 폭력은 국민의 알권리라는 이름 아래 여성은 물론 그의 가족과 아직 철저히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까지 겨냥한다. 전 국민 앞에서 자신의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살아온 생애가 송두리째 부정되며 아이들까지 12월의 칼바람을 맞아야 하는 이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지만, 누구에게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삶의 자락들이 있고 깊이 묻어 두고픈 상처가 있다. 그리고 내 안의 슬픔과 상처가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지킬 자유가 있다. 누구에게나 사생활의 영역은 있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은 프라이버시(privacy)를 누릴 권리가 있다. 설사 그가 공직에 나선다고 해도 직무와 관련이 없는 한 우리 중 누구에게도 프라이버시를 함부로 훼손할 자유는 없다. 민주주의는 이런 원칙을 지킬 때만 생존할 수 있다.
사생활, 사적인 생애에 대한 공격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진다. 공격의 대상이 된 이들이 겪는 고통은 성별에 관계없이 크고 아플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 여성에 대한 공격은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거두기 쉽다. 여성은 여전히 소수자이고 목소리가 낮으며 권한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가 표적이 될 경우 훨씬 눈에 띄고 다수자의 지지에 편승해 공격의 가혹성은 배가된다. 여성이 표적이 될 때 섹슈얼리티와 친밀한 관계는 물론, 딸이나 엄마, 심지어 며느리 노릇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비난의 스토리텔링에 등장한다.
이런 스토리텔링의 끝은 '오셀로 효과'에 이르기 쉽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서 당대 최고의 존경을 받는 장군 오셀로는 부하 이아고에게 속아 아내 데즈데모나의 목을 조른다. 오셀로의 마음속에 깃든 아내의 불륜에 대한 의심이 이아고의 거듭되는 거짓말에 부추겨지고 아내 살해에 이르는 것이다. 오셀로 효과는 터무니없는 사건이라도 지속적인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곧바로 믿지는 않지만 '믿을 만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이론이다. 시나리오에 의한 신념의 조작이다.
중요한 것은 데즈데모나가 잘못을 범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시시각각 던져지는 시나리오들의 홍수 속에서 대중은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믿고 싶어 하고 믿어 버린다. 거리를 두고 의문을 던지고 비판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제랄드 브로네르가 한 설명이다.
정치의 세계에서 여성을 향한 공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아고인가? 오셀로인가? 아니면 이 비극의 막을 내릴 연출자인가? 선거가 민주주의 사회의 가치 있는 수단이 되려면 공격은 멈춰져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의 축제가 아닌가.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ㆍ전 한국여성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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