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국립묘지

박완규 2021. 12. 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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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유공자들을 안장하고 그들의 정신을 기리는 곳이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국립대전현충원, 국립호국원(영천·임실·이천·산청·괴산), 민주묘지(4·19(서울), 3·15(경남 창원), 5·18(광주)), 신암선열공원(대구) 등 총 11곳의 국립묘지가 있다.

이후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됐다가 2005년 지금의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 등도 안장 대상자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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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유공자들을 안장하고 그들의 정신을 기리는 곳이다. 현재 국립서울현충원·국립대전현충원, 국립호국원(영천·임실·이천·산청·괴산), 민주묘지(4·19(서울), 3·15(경남 창원), 5·18(광주)), 신암선열공원(대구) 등 총 11곳의 국립묘지가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국방부 소속이고, 나머지는 국가보훈처에서 관리한다. 국립묘지는 한국을 찾은 외국 정부 지도자의 방문 일정에 들어가며, 정치인들이 모종의 결단을 내리면서 참배하는 곳이다. 나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군인묘지 건설 논의가 시작된 것은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이었다. 1948년 ‘여수·순천 사건’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군인 희생자가 나왔고 후방 각지에서 벌어진 이른바 공비 토벌 작전 등에서도 많은 군인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서울 장충사(지금의 장충단공원)에 안치했지만 희생자 규모가 늘자 군인묘지 건설이 시급해진 것이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1955년 각지에 산재해 있던 순국 전몰장병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한 국군묘지가 서울 동작동에 조성됐다. 이후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됐다가 2005년 지금의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 등도 안장 대상자에 포함됐다. 아직도 흔히 ‘동작동 국립묘지’로 불리는 이곳은 명당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립제주호국원이 오늘 개원한다. 12번째 국립묘지다. 기존 제주시 충혼묘지를 확대 개편하는 방식으로 조성된 제주호국원은 제주지역 참전·독립 유공자와 민주유공자의 유해와 위폐를 안장하게 된다. 독립·호국·민주를 아우르는 최초의 통합형 국립묘지다.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제주지역 충혼묘지 13곳과 개인묘지에 안장된 국가유공자 등 4005명의 유해가 제주호국원으로 이장된다. 제주 출신 생존 안장 대상자는 4657명이다. 제주도의 지리적 여건과 제주 특유의 관습 탓에 육지의 국립묘지로 유해를 모시지 못한 제주지역 보훈가족의 애환이 해소된다. 국립제주호국원이 또 하나의 통합 상징이 되길 기대한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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