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노동 - 도로테 죌레 [채영신의 내 인생의 책 ③]

채영신 | 소설가 2021. 12. 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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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독교인임을 선언한다

[경향신문]

“우리는 스스로 창조자가 되도록 창조된 존재며, 스스로 해방을 위해 힘쓰도록 해방된 존재이고, 스스로 사랑하는 자가 되도록 사랑받는 존재다.”

대학교 1학년 기독교 문학 시간, 계단식 강의실 맨 뒷줄에 앉아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이 문장을 보았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인 하나님이 육체를 갖고 있진 않을 텐데, 그렇다면 그 형상의 ‘본’은 도대체 무엇일까, 오랜 고민에 답을 얻은 순간이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은 인간을 노동자와 사랑하는 자로 창조했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참으로 정성스럽게 독자를 설득한다. 태초의 창조는 완성된 것이 아니고 계속되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 창조를 계속 이어갈 협력자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를 부정하는 근거로 제시되어온 타락설화를 저자는 아주 새롭게 해석해낸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유아적 복종 대신 자유를 선택하고, 안락한 집에 머무르는 대신 거친 세상 속으로 나가 노동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살 것을 택한 것이므로 타락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지어주신다. 그들이 낙원을 떠날 때 그들을 따라온 하나님은 이 변화된 하나님이다. 인간의 성장이 하나님을 변화하게 만든 것이다. 이 멋진 해석이라니!

문득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떠오른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의 결과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만들어내고 싶은 세상이라면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말은 일종의 고백을 넘어 결의이고 선언이어야 하지 않을까.

채영신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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