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노룩(No Look)' 선거
[경향신문]
자주 보기 힘든 농구의 공격술에 ‘노룩(No Look)’ 패스가 있다. 우리 편을 보지 않고 공을 넘겨줘 한번에 수비를 무너뜨리는 고난도 기술이다. 정확성과 약속된 호흡이 필요한 이 속임수 패스는 축구·풋살·럭비에서도 보이고, 배구의 백토스도 광의의 노룩 동작이다. 4년 전엔 김포공항 입국장을 들어서며 눈도 안 마주치고 수행원 쪽으로 캐리어를 밀어보낸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대표의 노룩 패스 영상이 화제가 됐다.
7일 대선에서도 노룩 공방이 벌어졌다. 임태희 국민의힘 선대위 총괄상황본부장이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씨는 커튼 뒤에서 내조하는 역할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한 게 도화선이 됐다. 선거나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 ‘로키(Low Key)’ 행보를 예고한 것이다. ‘커튼 뒤’라는 표현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뒤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은 최순실 하나로 족하다”고 공격했다. 국가 예산을 쓰고 나라를 대표하는 공인인 대통령 부인 후보자의 생각·이력에 대해 정치적 검증 의지를 비친 셈이다.
과거엔 노태우·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부인이 노룩에 가까웠다. 공식행사나 해외순방에만 이따금 동행하고, 선거 현장에도 모습을 잘 비치지 않았다. 다만, 김건희씨 노룩은 보는 사람에 따라 결이 다를 수 있다. 똑같이 내조를 표방했지만, 본인이나 모친이 부동산·주식 등에 얽혀 검경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까닭이다. 그 설전은 김씨가 관여한 ‘개 사과’에서도 한바탕 벌어진 바 있다.
국민의힘 선대위가 활동을 시작한 이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후보와 선대위가 큰 실수만 안 하면 정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안전·방범 활동에 나섰다. 첫날부터 정책과 메시지는 캠프가 주도하고, 후보는 현장과 스킨십에 집중하는 ‘투트랙’ 선거 캠페인을 짰다는 관측이 나왔다. 여당에선 “이재명과 김종인이 대결하고, 윤석열은 보이지 않는다”는 노룩 공세를 시작했다. 윤 후보는 부인 김씨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그 시점은 검찰 수사나 제기된 의혹이 가닥잡힌 뒤일 수 있다. 이래저래 윤 후보 부부의 노룩 시비가 돌출할 수 있는 대선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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