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입자물리학' 일상 현상으로 쉽게 강의한 덕분이죠"

이근영 2021. 12. 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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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미국 뉴욕 스토니브룩대학 정창기 석좌교수
재미한국인 정창기 뉴욕 스토니브룩대학 석좌교수는 30년 넘게 국제 물리학계의 숙제인 ‘중성미자와 양성자 연구’를 주도해왔다. 정창기 교수 제공

“입자물리학자들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려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 변화를 가져온 연구 결과는 많습니다. 인터넷, 레이저, 위성항법장치(GPS), 많은 의학 진단 및 치료장치가 입자물리학 연구 과정에 파생됐습니다.”

미국물리학회(APS)가 해마다 수여하는 ‘줄리어스 에드거 릴리엔펠트상’ 2022년 수상자로 선정된 정창기 미 뉴욕 스토니브룩대학 석좌교수는 지난 5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물리학은 일반인들에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 중 일어나는 현상을 물리학으로 설명하면 쉽게 이해한다. 20여년 동안 스포츠 물리학 강의로 전공이 아닌 학생들에게도 물리학을 어렵지 않게 교육해온 일을 학회에서 높아 사준 것 같다”며 수상 배경을 말했다. 시상식은 새해 1월27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다.

미국물리학회 3대 상 가운데 최고 권위
‘줄리어스 에드거 릴리엔펠트상’ 선정
스티븐 호킹·킵 손 등 수상자들 쟁쟁

1979년 서울대 거쳐 인디애나대학 유학
‘중성미자·양성자 붕괴 연구’ 주도해
“궁극의 이론을 완성하기 위한 여정”

‘줄리어스 에드거 릴리엔펠트상’에 선정된 정창기 석좌교수는 ‘상을 받은 건 좋은 일이지만 과학하는 목표여서는 안된다’라고 말한다. 정창기 교수 제공

‘릴리엔펠트상’은 미국물리학회의 3대 상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상이다. 전계효과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인 줄리어스 에드거 릴리엔펠트를 기려 1989년 제정됐다. 역대 수상자에는 스티븐 호킹(1999년)을 비롯해 빅뱅이론의 창시자 앨런 구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1992년), 2017년 중력파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킵 손 캘리포니아공대 교수(1996년), 초끈이론의 대가 리사 랜들 하버드대학 교수(2007년) 등 내로라하는 물리학자들이 망라돼 있다.

모리 매키니스 스토니브룩대 총장은 보도자료에서 “정 교수가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물리학 분야 연구 공헌과 탁월한 강의, 열성적인 공동체 활동 등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입자물리학 분야 가운데 중성미자 진동과 양성자 붕괴 연구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중성미자는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의 하나다. 세가지 유형이 있는데, 한 유형에서 다른 유형으로 변할 때 발생하는 현상을 중성미자 진동이라 한다. 반면 양성자는 전자보다 2000배나 무거운 가장 큰 입자이다. 자연에서 많은 입자들은 더 가벼운 입자로 붕괴하는데, 양성자는 그렇지 않아 과학자들이 궁금해했다. 중성미자 진동과 양성자 붕괴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힘이 서로 작용하는 하나의 공식을 찾아서 자연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입자물리학자들의 ‘꿈의 이론’을 완성해줄 단서로 여겨지고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4가지 힘, 곧 중력·전자기력·약력·강력 가운데 중력을 뺀 3가지 힘으로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대통일이론’이라고 한다. 이 이론대로라면, 양성자는 더 가벼운 입자로 붕괴해야 한다. 거꾸로, 양성자의 붕괴를 관찰할 수 있으면 대통일이론이 증명되는 것이다.

정 교수는 과학자들이 궁극의 이론을 완성하기 위한 연구를 등산에 비유했다. “큰 산을 오르기 위해 작은 산봉우리를 넘어야 하듯이, 궁극의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대통일이론이라는 작은 정상을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의 중성미자와 양성자 연구 여정은 1991년 일본의 중성미자 관측 실험장치 ‘슈퍼 가미오칸데’ 연구팀과 연결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도카이-가미오칸데’(T2K) 실험에서 국제 공동 대변인을 맡는 등 국제 학계에서 주역을 맡았다. 또 1999년에는 양성자 붕괴 증거를 찾기 위한 ‘핵자(양성자와 중성자 총칭)의 붕괴와 중성미자’(NN) 연구그룹을 출범시키는 데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 엔엔 연구그룹은 현재 미국에서 심층중성미자실험장치(DUNE)를 구축 중이다.

중성미자 관련 연구에서는 1950년대 첫 발견에서부터 2015년까지 4번의 노벨 물리학상이 나왔다. 2015년 중성미자 진동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 일본 도쿄대 교수는 “정 교수는 25년 이상 중성미자 물리학의 발전에 중요한 구실을 해온 슈퍼 가미오칸데, T2K 실험에 크게 기여해왔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1979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6살 때 교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11살 때 입자물리학자를 꿈꿨다고 밝혔다. “나한테는 물리학이 언제나 쉬웠어요.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었지만 아무도 해답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물리학자가 밝혀낼 수 있다고 생각해 미래의 계획을 세웠지요.”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그는 시야를 넓히는 일에 더 집중했다. 대학 산악회에 들어가 회장을 맡은 그는 동아리 동계훈련을 이유로 전공필수과목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지도교수는 디(D) 학점을 줄 의향을 비쳤지만 정 교수는 “내 신념을 갖고 한 행동이니 책임을 지겠다”며 과락을 선택했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 다시 ‘계획된 길’로 들어서 누락한 수업까지 보충했지만 성적은 유학을 꿈꾸기에는 턱없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인디애나대학에서 장학생 입학을 허락한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해 인디애나대학 장학생 가운데 학부 시절 성적이 가장 낮았다. “미국 대학원 자격시험(GRE) 성적과 왜 대학 성적이 낮은지를 설명한 에세이 덕분에 합격한 것 같다”고 그는 회고했다.

등산과 각종 스포츠, 댄스, 요들송을 작곡할 정도의 음악에 대한 사랑 등 다방면에서 열정을 보인 그는 대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물리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정 교수는 “우선 물리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리는 수학을 언어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철학과 같다. 수학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물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포츠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고전물리학과 역학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2003년 ‘스포츠 물리학’이라는 강좌를 개설해 물리학도가 아닌 학생들한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의 강의는 유명세를 타 프로미식축구리그(NFL) 영상팀이 그의 수업 장면으로 8분짜리 영상을 제작했다. 2016년에는 브라질 올림픽 때는 <뉴욕타임스> 그래픽·멀티미디어팀과 함께 체조선수 시몬 바일스 등의 활약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상을 받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과학을 하는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사람들이 호기심과 열정을 가지도록 독려하고 지원한다면, 젊은이들이 더욱 행복하고 문화적으로 향상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젊은 사람들이 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정부가)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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