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한양 도성과 산성, 그 곳에 가고싶다

박영서 2021. 12. 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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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宗廟)는 조종(祖宗)을 봉안하여 효성과 공경을 높이는 것이고, 궁궐(宮闕)은 국가의 존엄성을 보이고 정령(政令)을 내는 것이며, 성곽(城郭)은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려는 것으로, 이 세 가지는 모두 나라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태조실록 6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산성 내 중성문과 함께 쌓은 중성(中城)이 그 하나이고, 또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과 동성(東城)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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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성(城)을 걷다 도경재·권혁준·김은정·문선 지음 / 새로운사람들 펴냄

"종묘(宗廟)는 조종(祖宗)을 봉안하여 효성과 공경을 높이는 것이고, 궁궐(宮闕)은 국가의 존엄성을 보이고 정령(政令)을 내는 것이며, 성곽(城郭)은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려는 것으로, 이 세 가지는 모두 나라를 가진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태조실록 6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1394년 당시 최고 의결기관이었던 도평의사사의 이같은 건의에 따라 태조 이성계는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고 외부의 침입을 막기위해 새 도읍지 한성부의 경계에 성곽을 쌓았다. 이후 한양도성은 조선의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최대 건축물이자 수도 한양의 표상으로 존재했다. 또한 나라의 근본인 종묘와 사직을 보호하는 울타리로 조선의 명암과 그 운명을 함께 했다.

책은 한양 땅에 자리한 세 개의 성(城)을 다루고 있다. 한양도성, 북한산성, 탕춘대성(蕩春臺城)이다. 내사산(內四山)이라 부르는 백악-낙산-목멱(남산)-인왕을 연결해 쌓은 게 한양도성이다. 북한산성은 외사산(外四山)의 중심인 삼각산(북한산)에 자리잡은 조선의 새로운 성이었다. 14세 어린 나이에 즉위해 46년간 수차례의 환국정치를 통해 강력한 왕권을 향유했던 숙종이 구상한 수도 중심 방어체제의 핵심이 북한산성이었다. 숙종 37년인 1711년, 12.7km에 이르는 북한산성이 축성되었다. 북한산성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보조성곽을 가졌다는 점이다. 산성 내 중성문과 함께 쌓은 중성(中城)이 그 하나이고, 또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과 동성(東城)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한양도성을 수없이 오르내리며 그 역사적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도성 길라잡이'다. 이들은 서울의 내사산과 북한산을 찾는 사람들이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중심으로 '산행과 역사'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보자는데 뜻을 같이 했다. 그 결실은 책으로 나왔다. 책은 한양의 성을 걷는 안내서인 동시에 한양의 성이 품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늘 우리 곁에 있지만 특별히 눈에 띄지도 않았고, 심심찮게 찾던 등산코스의 하나였을 뿐이던 한양의 성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선다. 한양 성들을 걸으며 600년 서울을 만나보자. 성을 쌓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곤소곤 들릴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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