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돈 없으면 드라마도 못 보는 세상

2021. 12. 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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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바야흐로 OTT 춘추전국시대다. 넷플릭스가 뜨면서 웨이브, 티빙, 왓챠 등의 국내 OTT도 활성화되고 있다. 쿠팡도 쿠팡플레이 플랫폼을 시작했다. 해외 플랫폼은 디즈니플러스가 강력한 후발주자로 떴고 아마존, 애플 등도 가세했다. 영상물이 넘쳐난다. '오징어 게임', '지옥' 등 화제작도 잇따라 나타났다.

문제는 이 영상물들이 그냥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OTT 측에 매월 돈을 내야만 영상을 볼 수 있다. 대체로 만 원 내외의 액수인데 OTT 세 개 정도에만 가입해도 금방 몇 만 원이다. 어쩌다 한 번도 아니고 매월 꼬박꼬박 내기엔 부담스러운 액수다.

영화야 돈을 내고 봤지만 TV는 오랫동안 거의 무료였다. KBS에만 수신료를 내는데 OTT에 비할 수 없는 소액이다.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TV는 온 국민이 함께 보는 기간 서비스였다.

과거엔 TV 화질 때문에 옥상 안테나를 붙잡고 씨름하는 경우가 많았다. 태풍이라도 오면 TV 영상이 오락가락했다. 그런 안테나 걱정을 덜어준 것이 유선방송과 그 뒤를 이은 케이블TV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다. 유선방송은 보통 몇 천 원 정도를 받았다. 케이블TV는 기존 방송사 화질 걱정을 덜어줬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채널들까지 대거 제공했다. 시청자는 태풍이 오건 돌풍이 불건 안테나 걱정 없이 고화질 영상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 대가로 기존 유선방송 때보다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여기까지가 서민들이 일반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선이었다.

거기에 OTT 요금까지 더 부담하는 것을 감당하기 힘든 서민들이 많다. 그에 따라 이제 유명 드라마에서 소외되는 국민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드라마가 전 국민에게 제공되는 보편 서비스였는데 그렇지 않게 돼가는 것이다. 드라마 시청마저 국민 사이에 차등이 생긴다니 씁쓸할 수밖에 없다.

TV 영상은 국민이 향유하는 기본적 문화콘텐츠였다. 이런 문화콘텐츠에 접근하고 향유할 기회가 사라져간다는 건 국민의 문화향유권이 위축된다는 뜻이다. OTT 전성시대의 그림자다. 현재 OTT 회사들이 저마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계획을 내놓고 있는데, 그런 투자액으로 스타들에겐 상당한 출연료가 지급될 것이다. 벌써 한 OTT 드라마에서 주연 출연료로 회당 5억 원이 책정됐다고 알려진 사례가 나타났다.

이런 돈 잔치를 떠받치는 건 결국 가입자일 수밖에 없다. 최근 넷플릭스가 요금을 인상한다고 밝혔다. 가입자의 부담은 점점 더 커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이런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요즘 젊은 시청자들이 OTT 드라마에 열광하면서 기존 방송사의 입지가 더욱 위축되고 있다. 기존 방송사 드라마의 PPL 광고를 조롱하고 질타하는 것이 유행이다. 드라마 '지리산'이 산 속에 유명 브랜드 샌드위치 등을 등장시켜 비난 받았다. 안 그래도 PPL이 몰입을 저해하는데 이런 논란까지 벌어지니 더욱 PPL이 나오는 방송사 드라마가 기피대상이 된다.

기존 방송사 드라마에는 또 중간 광고가 나오는데 이 역시 몰입을 깨는 요인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도 항상 도마 위에 오른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시청층이 이탈하면 기존 방송사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드라마 제작이 부담스러워 편수를 줄이는 추세가 시작됐다.

반면 OTT 드라마는 가입자로부터 돈을 받기 때문에 PPL광고, 중간광고 등의 문제가 없고 막강한 자본력으로 컴퓨터그래픽 논란도 덜 하다. 이런 이유로 젊은 가입자들이 몰리면서 OTT의 경쟁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기존 방송사와 OTT 사이에 '부익부 빈익빈'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기존 방송사들의 작품이 더욱 위축되고 OTT가 활성화되면, OTT에 소외되는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더욱 커질 것이다.

과거엔 TV 전파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것이었지만 그걸 받아서 영상을 띄우는 수상기가 고가였다. 그래서 이장님 댁에 있는 TV를 보려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다. 이젠 영상을 보는 기기 자체는 넘쳐나는 시대다. TV뿐만 아니라 휴대폰, 태블릿PC, 컴퓨터 등 종류도 많다. 하지만 시청료라는 문턱이 점점 더 높아지면서 다시금 경제적 부담이 보편적 시청을 가로막는 분위기다. OTT 혁명이 문화콘텐츠업계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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