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포스터를 뗐다고 산 채로 화형..파키스탄의 신성모독법 논란

김혜리 기자 2021. 12. 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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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파키스탄에서 한 스리랑카인 남성이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이름이 적힌 포스터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폭도 수백 명에게 구타당하고 살해당했다.

BBC 등 외신은 6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시알코트 지방에서 이슬람 군중이 신성 모독 혐의를 받은 스리랑카인 남성을 급습해 구타하고 산 채로 불태우는 사건이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양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매체 던에 따르면 해당 살해당한 프리얀타 쿠마라 디야와다나게(49)는 파키스탄에서 10여 년간 공장을 운영해 온 기독교인이었다.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영상들을 보면 폭도들은 디야와다나게를 길거리로 끌고 나와 돌과 막대로 마구 때리고 그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들은 불타는 시체 앞에서 셀카를 찍고 “신성모독”이라 외치기도 했다.

스리랑카 공항 직원들이 6일(현지시간) 항공기에서 프리얀타 쿠마라 디야와다나게(49)의 유해가 담긴 관을 받아 옮기고 있다. 이야와다나게는 신성 모독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주 파키스탄 시알코트에서 이슬람 군중에게 구타당했으며 이들이 붙인 불에 타 죽은 것으로 전해졌다. AP


이번 폭력사태는 디야와다나게가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이름이 그려진 포스터를 찢는 등 신성모독적인 행동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디야와다나게의 동료는 그가 건물을 청소하기 위해 포스터를 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디야와다나게의 아내도 “남편은 파키스탄에서 11년이나 일해왔다. 그는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생활 환경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금지돼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고 신성 모독을 부인했다.

이슬람교도가 주를 이루는 파키스탄에서 신성 모독은 처벌 대상이다. 파키스탄 신성모독법은 파키스탄이 영국에서 분리 독립한 1947년부터 존재해 왔지만 1980년대 지아 울 하크 전 대통령의 군부독재 시절 더욱 엄격해졌다. 지아 울 하크 전 대통령은 특정 종교에 대한 적대적 선동을 금지한 형법 조항에 1982년엔 “코란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자”, 1986년엔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자”에 대한 처벌 조항을 신설했다. 전자는 종신형, 후자는 종신형 또는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1991년엔 연방 샤리아 법원이 처벌 조항에서 종신형을 지우면서 신성 모독에 대한 처벌로 사형만 남게 됐다.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기도 전에 자경단이 나서서 신성 모독 피의자를 나서서 죽이는 일이 빈번할 정도다.

인권활동가들은 신성모독법이 소수자들을 핍박하는 도구로 쓰여 왔다고 비판한다. 국가정의평화위원회(NCJP) 자료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18년까지 신성모독법 조항에 따라 고발된 이들은 이슬람교도 776명, 아흐마디아교도 505명, 기독교도 229명, 힌두교도 30명이라고 한다. 파키스탄 인구의 90% 이상이 이슬람교인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소수 종교집단의 고발 비율은 이례적으로 높은 셈이다.

그중에서도 2009년부터 신성 모독 혐의로 10년 가까이 괴롭힘을 당해온 아시아 비비의 사례는 유명하다. 기독교인인 비비는 같이 일하는 이슬람교 여성들이 마시는 물에 입을 댔다는 이유로 신성 모독 혐의를 받았다. 보수적인 이슬람교도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물이나 음식을 공유하는 것을 금한다. 동료들과 말싸움을 벌인 비비는 며칠 후 무함마드를 모독했다는 누명을 쓰고 경찰이 보는 앞에서 폭도들에게 구타당했다. 그는 이후 9년 동안 독실에 갇혀 지냈다. 비비의 사면을 요청했던 샤바즈 바티 소수민족부 장관과 살만 타시르 펀자브주 주지사는 총에 맞아 숨졌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이번 사태를 두고 “파키스탄 수치의 날”이라며 “철저히 수사해 모든 책임자가 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6일 디야와다나게의 살해를 계획하는 등 이번 사태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피의자 131명을 체포했으며 이 중 26명이 그를 죽이는 데 “중점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중엔 16살짜리 소년도 포함돼 있었다고 현지매체 던은 전했다.

한편 스리랑카 당국은 현지 이슬람 사회에 대한 잠재적 불안과 보복이 두려워 아직 이 사건에 대해 충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모한 위제윅라마 파키스탄 주재 스리랑카 고등판무관은 파키스탄 당국의 대응에 만족감을 나타내며 “이 사건이 우리 나라, 종교, 인종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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