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못시켜 미안하다" 진주만 희생자 33인, 다시 하와이 잠들다

정지섭 기자 2021. 12. 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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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확인 '오클라호마 프로젝트'에도 신원확인 실패한 전사자, 한꺼번에 "소재 확인" 발표

2015년 6월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국립묘지에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 연구원들이 나와서 46곳에 분산돼 묻혀있던 신원 미상의 유골더미들을 파갔다. 유골 주인은 1941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침몰한 미 군함 USS 오클라호마함 승조원들이었다. 최신 유전자 감식기법으로 유족들의 DNA와 일일이 신원을 확인해 고향땅에 돌려보내는 ‘오클라호마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진주만 폭격으로 희생된 오클라호마함 승조원 하딩 쿨리지 블랙번 당시 3등 부사관. 6년간 이어진 신원감식작업에도 유해 확인에 실패한 그는 전우 32명과 함께 다시 하와이 땅에 잠들게 됐다. /DPAA 홈페이지

이후 6년 동안 396명의 전사자의 신원을 찾아내 귀향시켰지만, 33명은 최신 감식 기술로도 유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비운의 전사자들이 진주만 공습 80주기에 맞춰 6년만에 하와이 땅에 다시 잠든다. DPAA와 미 해군은 7일 오전 11시 20분(한국 시각 8일 오전 6시 20분) 호놀룰루 국립묘지에서 실종자로 최종 분류된 33인에 대한 재안장식을 엄수한다. 앞서 지난 1일 네브래스카주의 DPAA 신원감식시설에 보관돼있던 유해가 하와이에 도착하자 미 해군은 예포를 쏘며 6년만에 돌아온 희생자들을 맞았다.

DPAA는 이어서 3등 부사관 하딩 쿨리지 블랙번 등 재안장자 33명의 이름과 탑승당시 보직, 계급을 일일이 거명하고 이들이 소재가 확인됐다(accounted for)고 발표했다. 신원 확인을 위한 노력을 최후까지 경주했다는 의미를 강조해 ‘실종자’라는 말 대신 서른 세명을 한꺼번에 찾았다고 한 것이다.

바버(Barber)집안의 삼형제로 나란히 해군 복무중이던 맬컴·르로이·랜돌프가 세일러복을 입고 함께 찍은 사진. 삼형제는 진주만 폭격으로 오클라호마함이 침몰하면서 숨졌고 80년만에 시신의 신원이 확인돼 지난 6월 가족 품에 안겼다. /미 해군 홈페이지

DPAA는 2차대전과 6·25 전쟁, 베트남전쟁 등 과거 격전지에서 유골을 수습한 뒤 정밀기법으로 신원을 확인해 각별히 예우하며 고향으로 돌려보내왔다. 하지만, 한 번 파낸 유골을 있던 곳에 다시 안장시키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최첨단 기법으로도 판별이 어려웠다는 뜻이다. ‘오클라호마 프로젝트’는 일본군 피습 당시 초반에 구조된 생존 장병들의 지속적인 대정부 청원과 유해감식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진행됐다. 지난 6년간 실종자의 92%인 396명이 뒤늦은 귀향길에 올랐다.

지난 1일(현지시각) 신원확인에 끝내 실패해 하와이 국립묘지 재안장을 위해 돌아온 33인의 유해가 든 관을 미 해군이 예포를 쏘며 정중히 맞이하고 있다. /DPAA 홈페이지

백발의 노인이 된 동생과 자녀들, 또는 생전에 본적이 없는 손자와 조카 등이 유해를 맞았고, 고향마을 언론들은 이런 귀향 스토리를 대서특필했다. 아내와 어린 아이에게 보고 싶다는 손편지를 쓴지 8일 뒤 희생된 장병, 한 배에서 복무하며 서로를 의지하다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삼형제 등 하나같이 절절한 사연들이었다. 진주만 공습으로 오클라호마함을 비롯해 미 군함 8척이 피격됐고 총 2403명이 희생됐다. 이날 하와이를 비롯 미국 전역에서 진주만 공습 80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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