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개발과 투기로 멍든 농촌, 도시와 다른 공간계획 세워야"

조현숙 2021. 12. 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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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한가운데 삐죽이 솟아있는 아파트와 언덕 곳곳에 자리한 공장, 악취를 풍기는 매립지. 엇비슷한 풍경이 어느새 한국 농촌을 메우고 있다. 난개발과 투기로 멍들어가고 있는 농촌 현실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자리가 있었다. 지난달 30일 세종시에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농촌 문제의 제도적 해법 모색을 위한 전문가 좌담회’다.

송미령 농촌경제연구원 포용성장·균형발전연구단장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각계 전문가 모두 “도시계획과 다른, 농촌에 맞는 공간계획을 설계해야 한다. 난개발을 막게 관련 법률도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 발언을 간추려 소개한다.

지난달 30일 세종시 국립세종수목원 분재원에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최로 '농촌문제 제도적 해법 모색을 위한 전문가 좌담회'가 열렸다. 사진 농촌경제연구원

▶하승수 법무법인 농본 변호사=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살고 있다. 아침 9시에 출발해 여기(세종) 오후 2시에 도착했다. 같은 충남인데도 이렇게 불편하다. 모든 교통 체계가 다 서울 중심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교통뿐만 아니라 농촌 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지는 개발 사업도 문제다. 산업단지나 산업 폐기물 매립장이 전체 면 20~30명 이장단이 총사퇴를 해도 그대로 추진된다. 도에서, 중앙정부에서 인허가했다는 이유에서다.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난개발과 투기가 핵심이다. 농업회사법인을 만든 다음 부동산 개발을 하는 업체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도시의 산업 폐기물, 쓰레기, 오염 물질이 다 농어촌으로, 산지로 가고 있다. 사유재산권 행사와 주민의 의견, 어디에 우선권을 둘지가 첨예한 문제다. 주민협정의 제도화가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공간계획 법률 제정에 있어 반드시 반영해야 할 부분이다.

▶홍성렬 증평군수(전국농어촌지역군수협의회 회장)=농촌의 현실과 무관하게 농촌의 거주 여건을 점점 어렵게 만드는 제도와 법이 문제다. 최근 4년간 축사 건축 허가가 4배나 늘었다. 주민은 냄새 때문에 허가를 취소해달라 하고 행정소송을 하고 패소하고,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농촌 태양광 민원도 늘어나고 있다.

▶성경륭 농촌재생뉴딜위원회 위원장=공장이든 축사든 유해 시설이 부정적 외부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그에 대한 철저한 측정, 관리 통제에 대한 기준과 방법이 수립돼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 농촌공간계획 관련 법률 제정을 준비 중이다. 이런 내용이 충실히 반영돼야 한다.

▶송주희 너래안 대표=귀농 8년 차다. 결혼하려고 집을 찾아보니 농촌의 집값이 결코 도시보다 싸지 않았다. 임신하고 보니 산부인과가 없다. 어린이집 등 인프라도 부족하다. 아이 교육 때문에 다시 도시로 나오는 친구가 많다. ‘왜 우리는 농촌에 살고 있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려운 점이 많다.

지난달 30일 세종시 국립세종수목원 분재원에서 열린 '농촌문제 제도적 해법 모색을 위한 전문가 좌담회' 2부 행사. 사진 농촌경제연구원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농촌 지역에 외부 인구가 유입되지 않고 줄어가는 상황에서 외곽 개발만 하면 기존 공동체가 빠져나가고, 정주 환경이 점점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국토계획 밑에 지역계획, 광역도시계획, 도시계획이 있는데 놀랍게도 상당수 군급 지역엔 공간계획 자체가 없다. 농촌공간계획의 ‘마스터 플랜’이 너무 필요하다.

▶이상문 협성대 도시공학과 교수(한국농촌계획학회 회장)=농촌이 지니고 있는 경관과 환경을 자원으로 인식하는 게 출발점이다. 농촌계획은 도시계획과 수립 주체, 포괄 범위 등 질적 속성이 도시계획과 달라야 한다. 지역사회가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도 도시계획과 구분된다. 난개발의 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계획관리지역 부문은 농림축산식품부와 국토교통부가 같이 손질해야 한다.

▶김대식 충남대 지역환경토목과 교수=도시계획이 민간 위주의 자발적ㆍ포괄적 성격이라면 농촌공간계획은 국가에서 예산을 투입하는 공공 성격이 강하다. 농촌다움도 유지하면서 농촌 주민 삶의 질도 유지해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시계획이 있는 것처럼 농촌계획위원회를 만들어서 종합적으로 심사해 개발 행위 허가가 나도록 해야 한다.

▶김홍석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지역의 특색을 유지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려면 예산ㆍ정책이 ‘톱다운(위에서 결정)’이 아닌 ‘바텀업(아래에서 결정)’ 방식으로 가는 게 적합하겠다. 중앙 집약적이 아닌 지역의 특성에 맞게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 제도적 개선과 더불어 장기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유직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농촌공간계획 시스템 고도화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재정비 사업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 계획을 통해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지향하는 바를 계획 체계로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논의에 많은 시간을 기울였으면 한다.

▶송미령 단장=더 늦기 전에 농촌 주민이 참여해 농촌다움을 지킬 수 있는 공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계획이 실현될 수 있도록 농촌형 용도지구 등을 담은 법률 제정과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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