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고발사주' 허상과 공수처 폐지론

기자 2021. 12. 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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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변호사 前 부산지법 부장판사

공수처 출범 1년 다가오지만

능력 부족하고 정권 편향 심각

중국 ‘吳起 일화’에 오기 겹쳐

‘고발사주’ 직권남용罪 어려워

손준성 검사 마구잡이 부르고

공수처 차장은 아마추어 응석

오기(吳起)는 중국 전국시대의 명장이자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노(魯)·위(魏)·초(楚)에서 벼슬하면서 많은 공을 세운 영웅이지만, 자신을 비웃는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 30명을 베어 죽이고, 군주에게 충정을 보이기 위해 아내의 목을 쳐 버린 섬뜩한 독심(毒心)을 가진 냉혈한이라는 일화도 있다. 오기(傲氣)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거나 잘난 체하면서 방자한 기운’으로 이해된다. 두 ‘오기’를 모아보면 섬뜩한 독심이 있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며 잘난 체하는데, 정작 능력은 부족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지금 공수처의 모습을 그려보면 ‘오기’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고발사주가 죄가 된다고 할 때부터 의아했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강요하는 것인데, 고발장 작성을 검사의 직무 범위에 포섭하기는 어렵다. 공무상기밀누설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도 그 성립 가능성이 약하다. 나아가 손준성 검사와 윤석열 후보의 연계를 입증할 증거가 없으니, 윤 후보로 수사를 확장하기는 더 불가능하다.

공수처 여운국 차장은 “고발사주 사건이 대장동 수사보다 훨씬 중요한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시각에 동의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여권 성향의 국민이라 하더라도 공수처 차장의 이런 주장을 다소 낯부끄럽게 느끼리라 생각된다. 공수처 차장의 상상력을 따라가 윤 후보가 손 검사를 통해 자신의 신변과 관련한 고발을 사주했다고 치자. 그렇다 한들, 그게 뇌물로 수십억 원이 오가고 배임으로 수천억 원의 수익이 생긴 대장동 사건보다 중요하다고 보긴 어렵다. 공수처 차장의 이런 발칙한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오기로 그러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무턱대고 신청했다가 기각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히려 요건이 더 까다로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기각됐다. 어린아이도 하나를 달라다가 거절당하면 반 개라도 달라고 하지 두 개를 달라고 떼를 쓰진 않는다. 이런 사리 어긋난 짓을 하니, 대한변협조차 나서서 체포영장이 기각된 직후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는 기본권 침해”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그래도 오기가 여기서 그만둘 리 없다. 공수처는 지난 10월 26일 첫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불과 35일 만에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리고 또 기각됐다. 실체도 모호하고 범죄의 성립도 어려운 고발사주로 3연패를 했지만, 오기의 오기는 계속된다.

이번에는 이미 올해 초에 무혐의로 결정된 판사사찰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 불과 13시간 만에 손 검사의 뒤통수에 대고 다시 소환을 요구한다. 이 정도면 그 옛날의 오기(吳起)가 왔다가 고개를 내저으며 도망갈 듯하다. 공수처가 출범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도 얻은 성적표는 한심하다. 피의자 구속을 위해 발부된 영장 건수 0건, 공수처 차장이 자신들은 수사에서 아마추어라며 응석 부리기,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안에 대해서는 오기로 수사하기, 여권에 불편한 박지원의 ‘제보사주’ 의혹,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 방해 의혹 방치하기 등이다. 공수처 폐지론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검찰과 경찰 외에 수시로 특검법을 만들고, 필요하면 상설특검법을 활용할 수 있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외국의 입법례도 찾기 어려운 공수처를 만든다고 할 때부터 무용론은 비등했다. 그렇지만, 정권의 고집으로 탄생한 기구다. 탄생 시점부터 공직자의 비위를 잡기보다는 정권의 적들을 처단하는 기구로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현재 공수처의 행태를 보면 그 우려가 그대로 현실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공수처가 한 일이라고는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정권을 결사옹위한 것뿐이다. 공수처야 정치적 편향성을 부인하겠지만, 고발사주와 판사사찰 등에 질기게 매달리는 이유가 윤 후보를 빼면 잘 설명되지 않는다. 반면, 검찰은 여당 대선 후보에게 불편한 대장동 수사에 큰 성의가 없다. 여권은 특검을 얘기하지만, 뭉그적거리는 모습이 확연하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사정기관을 최대한 활용하는 이 정권의 연성 독재가 부끄러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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