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드론 타고 산에 가는 100년 후, 산악인이 멸종됐다

글·그림 윤성중 2021. 12. 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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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등산 SF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스카이 플릭스를 타고 등산 여행을 하는 사람들. 100년 후 등산객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그들을 ‘플릭서’라고 부른다.
뒷산 오르막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능선 쪽을 슬쩍 봤다.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했다. ‘나도 어서 저쪽에 끼어 시원한 경치 바라보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순간 못된 상상을 했다.
‘능선에 있는 어떤 사람 한 명과 오르막에서 땀 뻘뻘 흘리고 있는 지금 나의 위치를 바꾸는 기술이 있다면 참으로 유용하겠다!’
아무리 상상이지만 영문도 모른 채 나와 위치가 바뀐 상대방은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그래서 생각을 순화해서 더 발전시켰다. 순간이동 장치를 만들어 산꼭대기까지 힘들이지 않고 휙 올라갈 수 있게 말이다.
상상이 여기에 이르자 궁금증이 생겼다.
‘어라? SF 영화나 소설에서 등산을 소재로 다룬 적이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본 등산 SF물은 없다. 이 지면을 빌어 한국 최초? 아니 세계 최초일까? 아무튼 등산을 SF장르와 엮어 보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휘리릭 썼다. 장대한 서사는 절대 아니다. 먼 미래, 세계의 등산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꾼 어떤 발명가와 발명품에 관한 이야기다. 당연히 아래 내용은 허구다.
스카이 플릭스 초기 모델(왼쪽)과 완성 모델(오른쪽). 초기에는 드론에 손잡이만 달린 엉성한 모양이었다. 발전을 거듭해 드론 위에 강화 플라스틱 막을 덮었고 날씨에 상관없이 어느 산이든 안전하게 오를 수 있게 됐다.
스카이 플릭스의 탄생
지금(2151년)으로부터 약 100년 전, 대부분의 플릭서Flixer(예전에는 등산객, 혹은 등반가라고 부름)들은 모두 ‘걸어서’ 산에 올랐다. 왜 그랬냐고? 당연히 스카이 플릭스Sky Flix가 없었으니까. 산행, 트레킹, 종주, 트레일러닝 등 생소한 이 단어들은 예전 하이커들이 산에서 치열하게 걷거나 달렸다는 걸 의미한다. 산에서 어떻게 치열할 수 있지? 산에서 왜 걷지? 거기서 어떻게 달릴 수 있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테지만 거꾸로 80년 전에는 지금과 같이 산을 ‘이용’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여기서 이용한다는 말은 적절하지 못한데,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산을 도구로 쓴다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 같지 않았던 모양이었던 듯한데, 아무튼 예전에는 산에 동물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더 옛날에는 산에 나무가 아예 없었다고도 하는데, 그래서 이때는 ‘환경운동가’라고 불렸던 사람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그들은 산을 ‘보호’하는 데 온 신경을 썼고 심지어는 인생을 바치기도 했다. 반대쪽 편에 있던 사람들은 산을 헤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스카이 플릭스 CEO 찰스 예프. 에베레스트에도 스카이 플릭스를 설치해 달라는 어떤 재벌의 말을 거절한 그는 “산악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뛰어난 실력을 갖춘 등반가였던 스카이 펠릭스 CEO 찰스 예프Charles Evs는 어느 편도 아닌 중간이었다. 굳이 그의 주장을 언급하자면 “그냥 놔두자”였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정부가 어느 산악마을에 케이블카 사업 시행 인가를 냈고 여기에 환경운동가들과 마을 주민 등이 충돌한 것이다. 산에서 내려온 찰스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자신의 주장인 “그냥 놔두자”가 양쪽 누구에게도 힘이 될 수 없거니와 심각한 충돌 사태를 해결할 수는 더더욱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경운동가들의 동지이자 마을 사람들의 절친이었던 그는 무력함을 느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연구를 시작했다. 케이블카를 찬성하는 마을 사람들과 환경보호를 주장하며 케이블카 사업 철회를 외치는 환경운동가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연구는 쉽지 않았다. 중간에 그는 산에 다니거나 혹은 직장에 잠시 매어 있거나 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러, 케이블카 설치 관련 문제가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듯 싶을 때, 드디어 2071년, 스카이 펠릭스 프로토타입 No.1 ‘스카이 예프(초창기 제품은 그의 이름을 따서 제품 이름을 지었다)’가 탄생했다. 스카이 예프는 굉장히 조악했다. 당시 유행했던 드론에 사람을 태우고 이동시키자는 찰스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실현시킨 것이어서 안전장치가 미흡했다.
스카이 플릭스 정거장. 건물 안으로 드론들이 끊임없이 사람을 실어 나른다.
스카이 예프 첫 탑승자는 몇 미터 이동하지 못하고 드론에서 굴러떨어져 시연을 보기 위해 몰려온 기자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부끄러운 시작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던 찰스는 연구 개발에만 몰두, 불과 1년 만에 그럴듯한 시스템을 만들어내 다시 대중 앞에 섰다. 이름은 스카이 플릭스Skyflix로 바뀌었다. 스카이Sky와 넷플릭스Netflix의 합성어로 하늘에서 넷플릭스(당시 유명했던 OTT 서비스 플랫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는 뜻이다(첫 시연 때 스카이 예프에서 굴러떨어진 직원이 병원에서 넷플릭스만 보는 데서 착안했다).
스카이 플릭스는 보관하기도 쉽다. 강화 플라스틱 막을 벗겨낸 다음 엔진 부분과 분리해 겹쳐서 보관할 수 있다.
산악인의 멸종과 플릭서의 대두
스카이 플릭스의 기초가 된 찰스의 아이디어는 ‘케이블카 대신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드론을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할 경우 케이블카를 지탱할 기둥을 산 중턱에 박아 넣지 않아도 되고, 산 아래와 꼭대기에 드론을 거치할 수 있는 작은 건물만 짓자는 것이다. 그는 스카이 플릭스가 환경운동가와 마을 주민들 모두 만족시키는 시스템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찰스의 예상은 어느 정도 맞았다. 환경운동가들은 그가 만든 시스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환영했다. 문제는 스카이 플릭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했다는 것인데, 첫 오픈날 스카이 플릭스를 타기 위한 대기 줄이 무려 1km에 이르렀고 6개월 전에 예약해야 겨우 탈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산꼭대기에 올라 오히려 주변 환경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초반엔 우려대로 정상 주변이 어지러웠지만 찰스가 나서서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스카이 플릭스를 운영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 바람에 문제가 거의 해결됐다. 당시 스카이 플릭스의 인기가 그만큼 대단했다.
100년 후 산에서 걷거나 뛰거나 바위에 매달리는 사람은 없다. 스카이 플릭스가 사람들의 등산에 대한 흥미를 잃게 했다. 사람들은 스카이 플릭스에서 내려 그저 경치를 보기만 한다.
스카이 플릭스가 전 세계에 변혁을 일으켰다. 우선 이 시스템은 전 세계 산 곳곳에 적용됐고 스키장에서도 활용했다. 덕분에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산꼭대기에서 간혹 스카이 플릭스 존을 벗어나 조난을 당해도 구조용 드론을 보내 신속하게 조난자를 구조할 수 있었다. 막대한 투자금을 가지고 찰스를 찾아와 에베레스트에 스카이 플릭스를 설치하자는 재벌도 있었다. 찰스는 “그렇게 할 경우 ‘산악인’이라는 별종들이 사라질 수 있다”면서 거절했다. 찰스의 이런 결정에 수많은 산악인들이 그를 지지했고 급기야 ‘찰스법’까지 생겨 ‘고도 3,000m 이상은 스카이 플릭스 같은 이동수단을 설치하면 안 된다’는 제한까지 생겼다.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산악인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찰스법’ 때문에 오히려 전통적인 등산, 등반을 즐기던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스카이 플릭스를 타고 미지의 영역까지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은 산에서 오래 걷거나 빨리 뛰거나 어려운 절벽이나 빙벽을 오르는 일에 흥미를 잃었다. 스카이 플릭스 덕분에 멸종 위기에 몰렸던 동식물들이 되살아났지만 산악인이라는 특별한 부류가 없어질 위기에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됐다. 끝내 산악인 단어 자체가 사라지고 산을 찾는 사람은 모두 플릭서가 됐다.

본 기사는 월간산 1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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