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하거나 '1.5배속' 보거나.. OTT 시대 '시청 혁명'

안진용 기자 2021. 12. 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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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강의 익숙한 MZ세대

“5초 광고도 기다리기 지루해”

장면 건너뛰기·빨리보기 기본

6시간 드라마 4시간만에 완주

‘시청 자율성’ 눈뜬 소비자들

TV드라마도 종영후 몰아보기

플랫폼이 콘텐츠 판도도 바꿔

직장인 강기훈(35) 씨는 TV를 보지 않는다. 극장 나들이에도 별 관심이 없다. TV 드라마나 극장용 영화가 재미없어서일까? 강 씨의 답은 간단했다. “기다리기 지루해서요.”

주로 스마트폰을 통해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ver The Top·OTT) 콘텐츠와 VOD(주문형 비디오)로 본다는 김 씨는 어떻게 콘텐츠를 즐길까? 스킵(skip) 기능을 이용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건너뛰거나, 아예 1.2배속 혹은 1.5배속으로 돌려본다. “제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이렇게 본다”는 강 씨는 “TV 드라마나 영화는 보여주는 대로 볼 수밖에 없지 않나. 스킵이 익숙한 세대들에게는 그 짧은 순간조차 견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건너뛰며 보거나, 배속으로 보거나

OTT 플랫폼은 모두 스킵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모두 화면을 클릭하면 10초 앞뒤로 오갈 수 있다. 대사가 없어 스토리 흐름을 이해하는 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장면은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는 이가 적잖다.

넷플릭스는 0.5∼1.5배속으로 콘텐츠의 스트리밍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통상 6∼8부작 내외로 구성되는 넷플릭스 드라마의 총 러닝타임은 6시간 안팎. 하지만 1.5배속으로 보면 4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다. 여기에 10초 건너뛰기 기능까지 포함하면 연작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러닝타임이 긴 영화 한 편 보는 수준이다. 이런 시청 패턴대로라면 2시간 분량 영화는 1시간 정도면 가뿐히 소화할 수 있다.

MZ(밀레니엄+Z세대) 세대에게 스킵과 배속보기는 이전 세대보다 익숙하다. 그들은 인강(인터넷 강의) 세대이기 때문이다. 공부에 열중하던 이들은 분초를 아끼기 위해, 공부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들은 인강 시청을 빨리 마치기 위해 이 기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유튜브 세대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이들을 적잖이 볼 수 있다. 대다수 유튜브 광고를 넘기기 위한 동작이다. 유튜브 콘텐츠의 경우 앞뒤로 짧은 광고가 붙는데 5초가 지나가면 ‘광고 건너뛰기’가 가능하다.

또 다른 직장인 김소리(29) 씨는 “그 5초를 기다리기 싫어서 미리부터 광고 건너뛰기 부분을 계속 눌러 댄다. TV 위주로 콘텐츠를 즐기던 시절에는 즐겨 보는 드라마를 기다리며 5분 넘게 광고를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5초도 견디기 어렵다”면서 “단순히 물리적 시간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시청 행태가 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시청 방식으로는 스토리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의 미장센(무대 위에서의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 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인 계획)도 만끽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어벤져스’ 시리즈처럼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보면서 즐길 가치가 있는 영화가 나온다면 극장에 갈 의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역으로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즐겨도 무방한 콘텐츠를 보기 위해 굳이 비싼 돈을 내고 극장에 갈 생각도 없다”고 덧붙였다.

◇핵심은 ‘시청 자율성’

스킵 기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시청 행태를 MZ세대만의 특징으로 보기는 어렵다. 온라인을 통한 소통에 익숙한 밀레니엄 세대에게는 ‘스압주의’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다. 이는 ‘스크롤바의 압박이 예상되니 주의하라’라는 문장의 줄임이다. 온라인 게시물 중 유독 길이가 길거나 혹은 지루할 경우 꼼꼼히 읽지 않고 마우스의 스크롤바를 계속 내리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지루한 대목은 건너뛰고 재미만을 추구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시청 행태의 근간은 ‘자율성’이다. 편성표대로 움직이는 TV 드라마나 상영 시간을 준수해야 하는 극장 영화의 경우, 작품의 선택권은 주어지지만 시청 과정에서 자율성은 거의 없다. OTT 콘텐츠의 경우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제멋대로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공개된 애플TV플러스의 ‘닥터 브레인’과 쿠팡플레이의 ‘어느 날’의 경우 1주일에 1편씩 공개되자 이용자들이 “이러면 TV 드라마랑 다른 게 뭐냐”며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같은 맥락으로 MZ세대들은 TV 드라마도 ‘몰아보기’한다. 정규 방송 시간대는 오히려 피하고, 스킵이나 배속 시청이 가능한 VOD로 나오면 그제야 챙겨보거나 아예 16부작이 끝난 후 주말을 이용해 한꺼번에 보는 식이다. 그러니 드라마 시청률은 하락하고, 특히 광고주들이 선호하는 2049 시청률은 더 내려갈 수밖에 없다.

2019년 공개됐던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 미러:밴더스내치’는 쌍방향 콘텐츠로 화제를 모았다. 콘텐츠 중간에 선택지가 등장하고,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에 따라 결말 또한 달라진다. 그 역시 제작진이 써놓은 각본대로 움직일 뿐이지만, 시청자가 자율적으로 이야기 방향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대중이 시청 자율성을 좇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단상이다. 그 당시 내한했던 제작 총괄 찰리 브루커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했고, 기쁜 마음으로 지켜봤는데,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인터랙티브한 방식으로 만들었을 때 의미 있는 스토리가 있다면 또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결국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의 변화가 세상을 바꾼 것이라 할 수 있다. 스킵과 배속 기능에 익숙한 시청자 입장에서는 앞뒤 광고에 중간 광고까지 기다려야 하는 정규 편성 드라마를 꺼릴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이런 시청 행태의 변화는 궁극적으로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 위주로 흐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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