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존폐 위기 ‘아마추어 공수처’

이정구 기자 2021. 12. 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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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 지난 1월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내세운 목표였다. 그랬던 공수처가 출범 11개월 만에 존폐 위기에 놓였다. 출범 이후 자체 인지 사건이 0건이기 때문도 아니고,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서 손준성 검사에 대한 영장이 세 차례 기각된 것 때문도 아니다. 여운국 공수처 차장검사가 판사 앞에서 “우리 공수처는 (수사) 아마추어”라며 법원에 손 검사 영장 발부를 읍소했던 게 결정적이었다. 법조인들은 “스스로 존재 의의를 부인한 촌극”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1월 21일 당시 남기명 공수처 설립준비단장(왼쪽부터),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추미애 법무부장관,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초대 처장이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공수처 현판 제막식에서 현판식을 갖고 있다./이태경 기자

지난 11개월 공수처는 무얼 했을까. 지난 3월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소환 조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을 때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 후배로 현 정권에서 검찰 요직을 두루 차지한 실세 중의 실세 조사였기 때문이다.

공수처의 출범 약속대로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에 포토라인은 없었다. 공수처는 일요일에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를 보냈고 이 지검장은 과천시 모처에서 관용차로 갈아타고 몰래 공수처에 들어와 면담 조사를 받았다. 공수처가 면담 기록도 남기지 않아 조사가 인권 친화적 분위기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대신 “공수처 조사받으면 공수처장 관용차를 보내달라고 해야겠다”는 조롱만이 남았다.

그러나 고발 사주 의혹 수사에선 180도 다른 수사 기관이 됐다. 지난 10월 손준성 검사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손 검사 측과 향후 출석 날짜를 조율하다가 돌연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기각 후에도 공수처는 다시 출석 일정을 조율하며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하더니 2차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재차 법원에서 기각됐다. 판사 출신 여 차장은 최근 주변에 “수사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공수처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을 위법 압수수색했다가 법원에서 효력이 취소되고, 대검 감찰부 ‘하청 감찰’ 등 여러 논란만 빚었다. 특히 공수처 설립 취지를 의심케 하는 정치적 중립성 문제만 부각됐다. 여운국 차장은 여당 의원과 식사 약속을 잡았다가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고, 박지원 국정원장 등이 고발된 ‘제보 사주 의혹’ 수사는 답보 상태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취임사에서 “오로지 국민 편만 드는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지만 ‘윤수처(윤석열 수사처)’라는 지적만 반복되고 있다.

‘아마추어 공수처’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공수처는 내년 예산으로 약 200억원을 요구했는데 비슷한 규모 검찰 지청 예산의 9배다. 한 변호사는 “올해 여름 성폭력피해자 인적 사항을 유출한 검사와 판사의 직무유기에 대해 공수처에 고발장을 제출했는데, 반년 넘게 수사 착수 여부도 통보받지 못했다”며 “문재인 정부 검찰 개혁 이후 시민들이 느끼는 변화는 무엇일까? 허탈감 아닐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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