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늙은 미켈란젤로

곽아람 기자 2021. 12.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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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마도 그는 오만하고 재능 있는 외곬수의 예술가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을 겁니다.

그는 20대에 ‘피에타’와 ‘다비드’를, 50대에 메디치 예배당 조각을 제작하고, 60대에 시스티나 제단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려 일찍 명성을 떨쳤죠.

1546년 미켈란젤로는 일흔 한 살 이었고, 40년간 붙들고 있던 교황 율리우스 3세의 영묘 제작을 마친 후 처음으로 할 일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황 파울루스 3세에곈 ‘계획’ 이 있었죠. 교황은 1505년 브라만테가 설계해 40여년간 짓고 있었던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책임자로 미켈란젤로를 임명합니다.

미켈란젤로는 고령이었고, 쇠약해서 아마도 성당이 완성되는 것은 커녕, 어느만큼 지어지는 것조차 보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될 가능성이 높았는데도요.

미국 미술사학자 윌리엄 월리스가 쓴 ‘미켈란젤로, 마지막 도전’은 70세부터 89세로 숨지기까지 미켈란젤로 최후의 20년을 다룹니다. 오만하고 괴팍한 젊은 천재로 각인된 미켈란젤로의 인상을 지우고, 죽음을 숙고하는 명상적인 노인으로 묘사합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 죽음에 대한 공포, 고독과 싸워야 했던 이 예술가가 어떻게 그 시간을 인내하며 신(神)의 종으로서 마지막 임무를 다했는지를 그려냅니다.

이제 나의 백발과 나의 고령을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

72세 때 쓴 시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고, 그 후로 17년을, 그토록 그리던 고향 피렌체에도 가지 않고 대성당 설계에 몰두했습니다. 대성당은 미켈란젤로 사후 약 100년이 지난 17세기 중반에야 완공되었지만, 미켈란젤로는 ‘성 베드로 대성당 설계자’로 역사에 남았죠. 늙음을 연료로 ‘만년의 고독’을 이겨낸 이 예술가의 이야기가 모두가 공평하게 한 살씩 더 늙기를 기다리고 있는 세밑, 모두에게 위로가 되기를 빕니다.

나는 망가진 책의 기억을 관찰하고, 파손된 책의 형태와 의미를 수집한다. 책 수선가는 기술자다. 그러면서 동시에 관찰자이자 수집가다. 나는 책이 가진 시간의 흔적을, 추억의 농도를, 파손의 형태를 꼼꼼히 관찰하고 그 모습들을 모은다.

지난 주 출간된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위즈덤하우스) 중 한 구절입니다. 책 수선 공방을 운영하는 배재영씨가 파손된 책의 모습, 소중한 책에 얽힌 의뢰인의 기억, 책이 수선돼 재탄생하는 과정 등을 기록했습니다.

어릴 때 좋아했던 동화책이나 소설책 수선을 맡기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데 이들은 대개 “책 속에 남아 있는 낙서는 지우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네요. 저자는 추측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들에게 낙서는 책에 대한 훼손이 아니라 기억이고 추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책을 읽던 순간을 기억해내고, 책의 내용을 떠올리고, 더 나아가 본인의 어린 시절까지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낙서들은 그 책을 읽는, 아니 그 책을 경험하는 또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어느 의뢰인은 1970년대 계몽사판 동화책 ‘유리구두’(엘리너 파전 지음)를 수선해 달라며 맡깁니다. 종이가 누렇다 못해 갈색으로 변해버리고, 찢어진 채 방치된 페이지도 많으며 곳곳에 기름 성분으로 추정되는 오염 자국이 있는 책을 고치며 저자는 적습니다.

나는 이 파손들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단 종이가 갈색으로 변할 만큼 긴 세월 동안 잊지 않고 간직해 온 사랑, 곳곳에 이런저런 낙서를 했을 만큼 늘 가까이에 두었던 사랑, 그리고 아마도 좋아하는 과자와 함께여서 더 즐거운 독서 시간이 되었을, 그런 사랑들 말이다.

이런 사랑, 여러분의 기억 속에도 한 두 권 있지 않나요?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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