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83] 엄마를 그만두고 싶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1. 12.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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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공기관에서 진행한 육아 번아웃 관련 비대면 고민 상담 프로그램 제목이 짠하게 느껴졌다. ‘엄마를 그만두고 싶다?’였다. 당연히 실제 엄마를 그만두겠다는 사람은 없었지만 고민이 담긴 채팅 창이 너무 빠르게 올라가 읽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고민 사례가 많았다. 우선 첫째와 둘째 아이를 동시에 양육하기가 힘들다는 내용이다. 아이 둘을 키울 때는 두 배가 아니라 그 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될 수 있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큰아이와 작 아이 사이의 질투다. 질투는 자신이 더 사랑받고 싶은 생존 본능이기에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지만, 큰아이가 다시 이유식을 먹겠다는 등 동생을 흉내 내는 ‘퇴행 행동’을 보이고, 둘이 울고 싸우면 엄마는 번아웃에 이르기 쉽다.

네 살 아이에게 형으로서 한 살 동생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말은 별 효과가 없다. 다 아직 아이다. 양적 공평보다는 질적 공평 전략이 효과적이다. 똑같이 안아주고 같은 장난감을 사주기보단 나이에 따라 다른 놀이를 해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아무래도 동생에게 시간을 더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형에게 이해하라고 말하기보다는, 동생이 잘 때 형 나이에 가능한 놀이를 해주며 “이건 우리만의 놀이”라고 접근하는 것이 질적 공평 전략이다.

아이에게 화를 내 속상하고 자신이 엄마로서 한심하게 느껴진다는 고민도 많았다. 마음이 지쳐 번아웃이 오면 아끼는 자녀에게도 까칠하게 대할 수 있다. 그럴 때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비판하면 마음이 더 지치게 된다.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열심히 육아하다 보니 내가 지쳤구나’ 하며 일단 자기 마음을 위로하고 안아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도 나에게 에너지를 주지만 육아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더 많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안타까운 상황도 많지만, 그럴수록 배우자가 적극 도와야 한다. 우리, 그리고 아이를 위해 내 마음에 따뜻한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여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주말에 한 시간이라도, 한 달에 반나절 정도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거룩하고 어려운 엄마라는 직업을 위해 꼭 필요하다

분기에 한 번은 자녀를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부부가 남녀로서 데이트하기를 권한다. 사랑의 결과물이 자녀인데 자녀를 키우다 보면 남녀가 아닌 ‘엄마 아빠 동호회’처럼 관계가 바뀌기 쉽다. 그러다 보면 결혼 생활 중, 특히 자녀가 떠난 후 어색해져 힘들다는 호소가 많다. 부부가 데이트할 때 규칙 하나는 아이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 전 연애 시절처럼 영화든 음식이든 둘의 이야기만 나누며 남녀로서 애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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