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인사이드] 담합 사실을 모르는 대표이사와 이사의 손해배상책임
“대표이사는 담합 사실을 보고받지 않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법정에서 흔히 하는 주장이다. 앞으로는 이런 항변이 통하지 않게 됐다. 담합 사실이 적발돼 회사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등의 제재를 받은 경우, 담합을 실행한 실무자, 직접 감독 의무자 이외에 담합 사실을 보고받지 않아 모르고 있던 대표이사나 이사진도 감독의무 위반을 이유로 책임지게 된다.
최근 담합을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회사의 주주들이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주들이 담합 사실로 인해 납부한 거액의 과징금을 회사의 손해로 파악하고 대표이사 등 이사진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담합 사건에서 실행 행위는 실무자 선에서 이뤄지므로,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진들이 그 행위를 인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경영진이 담합 사실을 모르는 경우에는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한다면 담합 행위를 방치하고 의도적으로 외면한 경영진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오히려 책임을 면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 법원이 대표이사 등 이사진에게 더 적극적으로 위법 행위를 확인하고 방지해야 할 의무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일련의 판결을 내놓고 있다. 경영진이 담합 사실을 모르고 있던 사안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9월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한 데 이어, 대법원도 대표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선고했다. 대표이사 등이 담합으로 인한 예상하기 힘든 손해에 대해 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도록 법원이 제시하는 기준을 준수하고, 책임 요건들을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담합에 대한 대표이사 책임 확대
A사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담합 행위를 한 사실이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에 A사의 소액주주들은 담합 기간 중 재임한 대표이사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항소심은 모두 대표이사가 담합 행위를 지시·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대표이사의 책임을 부정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대표이사가 담합 행위를 지시·관여했다고 인정되지는 않는다면서도 “지속적이고도 조직적인 담합이라는 중대한 위법 행위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대표이사인 피고가 이를 인지하지 못해, 미연에 방지하거나 발생 즉시 시정조치 할 수 없었다면, 이는 회사의 업무 집행 과정에서 중대한 위법·부당 행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그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이를 이용해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고가 이 사건 담합 행위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고 임원들의 행위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고, 피고가 대표이사로서 마땅히 기울였어야 할 감시의무를 게을리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이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대표이사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덧붙여서 “피고가 내부통제 시스템으로 구축했다고 주장하는 내부회계관리제도는 대체로 회계 분야에 한정돼 있고, 윤리규범 등은 포괄적인 지침에 불과해 위법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통제하는 장치로서 기능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담합에 대한 이사 책임 확대
서울고등법원은 B건설 사건에서 이사에게 담합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B건설은 입찰담합 사실이 적발돼 공정위로부터 약 수백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에 B건설 주주들은 당시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당시 대표이사에 대해만 감시의무 위반을 인정했는데, 항소심은 당시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나머지 이사진에 대해서도 감시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사는 대표이사를 비롯한 다른 업무 담당 이사의 업무집행을 전반적으로 감시할 의무가 있다”면서, “입찰업무에 관여하거나 보고받은 사실이 없어 입찰담합에 관해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으며, 이를 의심할 만한 사정 또한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입찰담합 등 임직원의 위법 행위에 관해 합리적인 정보와 보고 시스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일본 사례
우리나라와 유사한 상황이 흔히 발생하는 일본의 상황을 살펴보자, 일본에서는 2000년대부터, 담합 행위를 발견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거나, 담합을 방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돼 왔다. 이런 소송들은 주로 이사들이 연대해 배상금을 회사에 지급하고, 담합방지 컴플라이언스 검증·제언 위원회를 설치하며, 재발방지책을 공표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화해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이사가 위반사실을 자진신고해 과징금 감면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리니언시 제도를 이용하지 않았거나, 다른 회사보다 늦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이사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본의 상황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담합 행위에 관여하거나 이를 방지할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경우뿐만 아니라 리니언시 제도를 제때 활용하지 않은 대표이사 등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구하는 주주대표소송도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앞서본 법원 판결의 추세에 비춰 볼 때 많은 경우 대표이사 등이 책임을 지는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다.
합리적 내부 시스템 구축해야
최근 판결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① 대표이사 등 경영진이 담합 행위자나 관련 부서로부터 담합 관련 보고를 받지 못하고 담합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도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 ② 이런 책임을 면하려면 ‘합리적인 정보와 보고 시스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를 이행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③ 담합 사실을 인지하고 자진 신고가 가능한 상황에서 적시에 자진 신고하지 않아 회사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회사 경영진으로서는 담합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방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담합이 발생한 경우에도 대표이사 등이 책임 논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담합 발생 여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보고 시스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단순 교육이나 사내 규정 마련 등으로는 부족하며, 경쟁사 접촉 시 사전 승인 및 사후 보고를 받도록 하고 담합 행위자에게는 징계가 이뤄지도록 하는 등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컴플라이언스 프로젝트 등을 통해 사내 담합 행위 또는 가능성 유무를 점검하고,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표이사 등 이사진들이 담합을 인지한 이후 시점부터는 자진신고 제도를 최대한 신속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회사를 위해 노력하고도 개인이 거액의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면 억울한 일이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