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46>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마르코 아넬리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마주한 얼굴들'] 행위예술에 참여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 관객의 초상사진

김진영 2021. 12. 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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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마르코 아넬리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마주한 얼굴들’ 표지. 사진 김진영

행위예술이란 신체를 매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이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신체를 활용한 예술 활동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실험하고 드러낸다. 유고슬라비아 출신 작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는 도발적이며 때로는 관객 상호작용적인 퍼포먼스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행위예술 작가다. 1970년대부터 활동한 그녀는 자신의 신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때로는 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퍼포먼스를 수행했다.

대표적으로 1973년 작 ‘리듬10(Rhythm 10)’에서는 손가락 사이사이로 칼을 내리꽂고 손이 상처를 입게 되면 칼을 바꾸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1980년 작 ‘정지 에너지(Rest Energy)’에서는 화살이 자신의 가슴을 향하도록 한 후 활시위가 당겨진 상태에서 정지 상태를 유지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여성 작가인 아브라모비치는 무방비로 노출된 자신의 신체를 수동적이고 연약한 상태로 두기보다, 아슬아슬한 힘의 균형과 전복을 보여주며, 자신의 신체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저항의 장소로 변모시킨 바 있다.

오늘날 그녀를 대중적으로 더욱 널리 알린 작업을 꼽으라면, 그것은 뉴욕현대미술관에서 2010년 3월 14일부터 5월 31일까지 약 736시간 동안 수행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일 것이다. 이 퍼포먼스는 대중적 흥행과 관심 면에서 대성공이었다. 총 1545명의 관객이 퍼포먼스에 실제로 참여했으며, 그녀 역시 이 작품이 10대 청소년이나 미술관에 좀처럼 가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행위예술이 무엇인지 관심 없는 이들까지 미술관에 오도록 만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작품의 제목이 말하는 바대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미술관 내의 의자에 앉아 있고, 그녀의 앞에는 빈 의자가 있다. 수많은 관객이 이 빈 의자에 앉아 그녀를 마주 보는 퍼포먼스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지어 기다리는 광경, 좋은 자리에서 퍼포먼스를 관람하기 위해 앞다투어 뛰어가 자리를 선점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마주한 얼굴들(Portraits in the Presence of Marina Abramovic·2021)’은 바로 이 퍼포먼스를 사진가 마르코 아넬리가 현장에서 기록한 사진을 담은 책이다. 작가와 관객의 모습, 현장과 비하인드 사진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 이 책이 가장 중점적으로 담고 있는 것은 작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아니라 관객의 초상이다. 관객의 얼굴이 담긴 사진마다 관객에게 부여된 고유 넘버와 이들이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가 함께 기록돼 있다.

당시 관객은 누구든 원하는 시간 동안 이 퍼포먼스에 참여할 수 있었다. 작가와 관객은 아무 말 없이 침묵 속에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소통했다. 어떤 이는 5분을 앉아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5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브라모비치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감정을 읽어내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웃었으며 누군가는 눈물을 펑펑 흘리기도 했다. 관객이 눈물을 흘리면 아브라모비치도 때로는 같이 눈물을 흘렸다.

이 퍼포먼스에 대해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왜 이렇게 오랜 시간 미술관에 앉아 있었으며, 이 퍼포먼스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일 것이다.

1, 2, 3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바라보는 관객들.4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미술관 의자에 앉아 관객을 바라보는 행위 예술을 진행했다.5, 6 퍼포먼스는 미술관 내 마련된 공간에서 진행됐으며 사진을 통해 작가의 신체적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 김진영

이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다소 낭만적인 해석도 있다. 이를테면, 예술가인 아브라모비치의 눈빛이 다른 보통 사람의 눈빛과는 다른 힘을 가졌다거나, 그녀가 남다른 공감 능력을 갖추고 있다거나 하는 해석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신체의 한계를 직면하고 도전하는 행위예술가로서 아브라모비치를 조망하기보다, 그녀를 또 하나의 신화로, 아이콘으로,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길고 긴 시간 동안 관객을 마주한 아브라모비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그 시간 동안 관객의 눈을 보며 아브라모비치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우리는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다만 인간으로서 그녀가 겪었을 신체적 고통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시 미술비평가 제리 샬츠(Jerry Saltz)는 그녀가 어떻게 소변을 해결하는지를 알아내고자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성인용 기저귀를 찬 것인지, 드레스 내부에 배뇨관이 연결된 소변 주머니가 있는 건 아닌지, 의자 내부에 요강이 있는 것이 아닌지 논쟁을 벌였다.

이 위대한 예술에 무슨 소변 이야기냐고 누군가는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퍼포먼스는 본질적으로 신체를 매체로 하며 신체의 한계에 직면하고 때로는 도전하며 다양한 금기와 경계를 건드리는 예술이다. 실제로 아브라모비치는 혹독한 신체 훈련을 거쳐야 했다. 물을 마시는 자신만의 사이클을 만들고 채식주의자가 되어 낮 동안 배뇨와 배설을 억제했다. 이 퍼포먼스를 가능하게 한 것은 그녀의 ‘눈’에 앞서서, 탈수 상태를 견디고 근육 상태를 조절하여 낮 동안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가도 되는 신체라 할 수 있다. 책에 수록된 일부 비하인드 사진을 통해,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그녀의 신체적 고통을 엿볼 수 있다.

이 퍼포먼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로 무표정을 유지하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그녀가 관객을 마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가 아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그녀를 마주한 관객의 표정이다. 관객은 왜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 자신의 감정을 끄집어내고 표현하게 되는 걸까?

“관객이 시선의 오감 속에 나를 바라보는 동안, 그들 안에서 시선의 반전이 일어나며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나는 방아쇠에 불과하고 거울일 뿐이며 실제로 그들은 자신의 삶, 자신의 취약함, 자신의 고통, 혹은 모든 것을 인식하게 되며, 그것이 그들을 눈물 흘리게 한다. 그들은 실제로 자기 자신에 대해 우는 것이며, 그것은 매우 감정적인 순간이다.”

이 퍼포먼스는 결국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감정의 투사로 완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처럼, 퍼포먼스를 기획한 것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이나 그 내용을 채운 것은 위대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한 사람이 아니라 1545명의 얼굴들인 것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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