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 5분만 더 보려고..아흔다섯 엄마는 계속 고개 돌립니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권혁재 입력 2021. 12. 6. 22:07 수정 2021. 12. 7.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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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디지털 서비스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

「 '인생 사진'에 응모하세요.
기억해야할 일이 많은 12월 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기억과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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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tory@joongang.co.kr
▶10차 마감: 12월 31일

떨어져 산 서른일곱해, 딸에게 엄마는 삶의 버팀목이었습니다. 딸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단어가 ‘엄마’이기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대학 졸업하자마자
결혼해서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벌써 37년 전이네요.

당시 엄마가 많이 우셨었습니다.
결혼식 하기 전
남편과 함께 출국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1년 전에 해야 했습니다.
그날도 엄마는 우셨습니다.

철없는 막내딸인 제가 환갑이 되니
이제야 엄마 마음이 공감되네요.

자랄 때 엄마가 수없이 하셨던 말씀들
또한 그렇습니다.
일본강점기 때의 고통,

전쟁 통에 큰오빠 낳았을 때의 고생,
빈손으로 나와서 시동생·시누이 공부시키고
결혼시켰던 일,
7남매 키워낸 시간,
더욱이 장남을 먼저 보내고 가슴에 묻은 시간,
그 모두 얼마나 만만치 않았는지
이제야 깨닫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2년 동안 못 뵌
엄마를 뵙기 위해
11월 9일 한국에 도착합니다.
이곳은 캐나다라서 한국에 들어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지만,
더는 미룰 수 없어 들어갑니다.

다른 때보다 넉넉히 있을 예정으로
한국으로 갑니다만,
벌써부터 어떻게 이별하게 될지
걱정스럽습니다.
한국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내 자식이 있는 캐나다에 도착할 때까지
매번 눈물이었습니다.
37년간 내내 그랬습니다.

집에서 헤어지면 좋으련만,
엄마는 떠나는 자식 얼굴
5분이라도 더 보시려고
불편하신 다리로 리무진 떠나는
버스정류장까지 꼭 나오십니다.

왜소한 몸에 눈 아래로 내리시고
조용히 앉아 이별의 슬픔을 누르시는
엄마의 모습,
출발하기 전 리무진 버스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저는 매번 통곡하며 떠납니다.

어렵고 만만치 않은 외국 생활 중
지칠 때마다 홀로 조용히
"엄마"하고 불러 본적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내 삶의 버팀목이셨습니다.

자식은 가까이 있어야 자식인 거지요.
제 자식이 멀리 떠나 있어 보니
제가 엄마에게 뭔 불효를 했는지
이제야 가슴 절절히 느끼고 있습니다.

외국서 중앙일보의
따뜻한 사진과 스토리를 보며
응모라는 걸 생애 처음으로 해봅니다.^^

되든, 안 되든 사연을 쓰다 보니
다시 가슴이 울컥합니다.
만약 된다면 95세 엄마에게
귀한 생신 선물이 될듯합니다.

캐나다에서 주미화 올림

바람과 먼지가 모녀를 휩쓸자 딸은 재빨리 손으로 어머니 얼굴부터 가렸습니다. 늘 어머니가 딸에게 그랬듯이요.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날,
날씨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진눈깨비 흩날리고
비도 간간이 흩뿌렸습니다.
바람 또한 어지간히 매서웠고요.

처음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눌 때도
세찬 회오리바람이
우리를 휩쓸기도 했습니다.

그때 사위가 나서
장모에게 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막았습니다.

이윽고 첫 사진을 찍을 때
어머니 얼굴을 덮친 바람과 먼지는
딸이 양손으로 막아냈습니다.

딸에게 힘든 해외 생활의 버팀목은
“엄마”라는 한마디였다고 했습니다.
그 버팀목에 부는 바람을
딸과 사위가 온몸으로 막아선 겁니다.

딸이 제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정말 예쁜 단어가 ‘엄마’일 겁니다.”
그 엄마를 바람과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일이
사진 촬영의 시작이었습니다.

딸이 한국으로 오는 길이 험난했습니다. 세상의 역병 탓에 오래 걸렸고,여러 번 검사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를 보는 길이기에 기꺼이 고국에 왔습니다.


딸은 이 사연 신청을 무척 망설였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질 기회를 뺏는 게 아닐까
염려도 됐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이 이해되는 나이가 되고 보니
꼭 엄마와 사진을 찍어 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답니다.

날이 참 얄궂었습니다. 비, 진눈깨비, 회오리바람, 먹구름 짓궂더니 마침내 해가 나며 파란 하늘이 모녀를 드리웠습니다. 모녀가 함께 가는 길이 늘 고운 날이기를 바라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제가 밴쿠버에 살고 애들이 토론토에 살아요.
비행기로 다섯 시간 거리인데도
한 번씩 다녀가면 입국장에서
애들이 들어가는 걸 지켜봅니다.
고작 5분이나 볼까요.
그런데 저희 딸과 아들이
저더러 빨리 돌아가라고 성화입니다.
그럴 때마다 ‘여기서 한 5분만 더 있게 해줘.
그래 봤자 5분인데’라며 말합니다.
스쳐 지날지라도 더 보고픈 그 마음,
제 엄마의 마음도 똑같은 거잖아요.
제가 한국에서 떠날 때도 마찬가지예요.
날 추우니 오빠와 올케언니가
한쪽 팔씩 엄마 팔짱을 끼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하시면,
다리는 어쩔 수 없이 가시는데
고개는 자꾸 뒤로 보시는 거예요.
그 모습이 어른 그려 캐나다로 가는 내내
저는 웁니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나오면
꼭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작정한 겁니다.”

아흔다섯해를 살아내며 일곱 자식을 품고 살아온 엄마를 환갑이 된 막내딸이 품습니다. 그 딸은 ″그래도 '엄마'는 ″'엄마'랍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머니 집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사진을 하나둘 찍어 나갔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어릴 적 딸을 품었듯,
딸이 어머니를 품는 모습을 한장 연출했습니다.
사진 찍으며 딸 손에 낀 장갑을 벗게 했습니다.
딸이 장갑을 벗는 순간,
어머니의 표정에 걱정이 비쳤습니다.
걱정 담은 그 표정이 어른거려
후다닥 사진을 찍고 마무리했습니다.

딸이 여태껏 지녀온 엄마와의 사진입니다. 언제 어디인지 정확히 기억 못 하지만, 오빠들 운동회에 따라가 찍은 사진이리라 어렴풋이 기억할 따름입니다. 어렴풋하지만 딸에겐 늘 위안이 된 사진임엔 틀림없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였습니다.
사진 촬영을 마치자마자
어머니의 재촉이 떨어졌습니다.

“얼른 장갑 껴! 감기 들어. 얼른!”
역시 ‘엄마는 엄마’였습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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