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군사경쟁 최전선이 된 적도기니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2021. 12. 6. 21: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중국, 아프리카 새 군기지 추진
대서양 건너 미국 심각한 위협
NSC 수뇌부 급파 차단 나서

중국이 미국 동부 해안에서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아프리카 적도기니에 군사기지 건설을 시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 군함이 미국 동부 해안을 마주 보는 대서양에 상주할 수도 있게 되자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고위 관리를 급파하며 군사기지 건설 저지에 나섰다. 인구 140만명의 작은 나라인 적도기니에 대한 미·중의 구애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WSJ에 따르면 중국이 서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은 적도기니에서 군사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장소는 바타라는 곳이다. 바타는 가봉과 카메룬 사이에 있는 적도기니 본토에서 가장 큰 도시다. 중국은 이미 기니만의 주요 항만도시인 바타에 큰 배들이 드나들 수 있는 상업용 심수항을 건설했다. 바타와 중앙아프리카 내륙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도 건설했다.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집중적으로 펼쳐온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군사전략으로 확장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적도기니 경찰 훈련 및 무장도 지원하고 있다.

미 정보당국이 적도기니에서 중국의 군사기지 건설 징후를 처음 포착한 시기는 2019년이다. 지난 10월 존 파이너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 등 고위 당국자들이 아프리카 방문 시 적도기니를 찾은 목적 가운데 하나도 중국의 시도를 차단하는 데 있었다. 바이든 정부는 적도기니 측에 미·중 경쟁의 최전선에 끼어드는 것은 근시안적인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스페인 식민지였다가 1968년 독립한 적도기니는 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8분의 1에 불과한,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속한다.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음바소고 대통령이 1979년부터 40년 넘게 장기 집권하고 있다.

중국이 대서양 지역에 상설 군사기지 확보를 추진할 것이란 관측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스티븐 타운샌드 미 아프리카사령관은 지난 4월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 유용한 해군 시설”이 들어서는 것이 “중국으로부터의 가장 중대한 위협”이라고 밝혔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 동부 해안을 마주 보는 곳에 중국 군함이 수시로 드나드는 상설 기지가 들어선다면 미국으로선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2017년 이미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지역에 있는 동아프리카 지부티에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해외 상설 군사기지를 세웠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이 지나는 지역인 지부티에 건설된 중국의 군사기지는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이 기항 가능한 규모로 평가된다.

적도기니는 미·중 양측의 구애를 받는 상황을 활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은 지난 3월 바타 인근 육군 기지에서 대규모 군수품 폭발 사고로 100여명이 사망하자 원조를 제공했으며, 올여름 기니만에서 미 해군 주도로 열린 훈련에 적도기니군을 참가시켰다.

대통령의 아들로 권력을 이용해 이권을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오비앙 망게 부통령은 지난 10월 파이너 NSC 부보좌관과 만난 뒤 백악관이 자신을 양국 관계를 위한 최고 교섭 상대로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오비앙 대통령은 며칠 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를 했다. 중국 정부는 성명에서 “적도기니는 언제나 중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로 간주됐다”고 밝혔다.

WSJ는 “외부의 관심을 별로 끌지 않는 나라를 둘러싼 충돌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 고조를 반영한다”면서 “양국은 대만 지위 문제,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코로나19 기원 및 여러 문제들을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