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제언'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길윤형ㅣ국제부장
지난 3일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일포럼’에 참석했다.
일반 독자들에겐 낯설게 들릴 이 포럼의 역사는 1993년 11월 김영삼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 총리가 참석한 경주 한-일 정상회담 때로 거슬러 오른다. 회담 직후인 12월 첫 모임이 열린 뒤, 매년 양국이 번갈아 가며 행사를 열어 올해로 29회째에 이른다. 운영위원으로 참여 중인 심규선 <동아일보> 전 편집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포럼의 제안으로 현실화된 주요 사업으로는 △양국 간 대중문화 개방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 등이 있다고 했다. 1989년 냉전 체제의 종식으로 열린 화해의 공간에서 양국 지식인들이 모여 우의를 다졌고, 그 활력이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행사가 열린 탓인지, 악화된 한-일 관계 때문인지 정작 행사 분위기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미-중의 처절한 전략 경쟁이 안보 영역을 넘어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공급망 재편’ 등으로 나아가는 심상치 않은 국제 정세를 생각할 때, 한-일 협력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데 참석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특히 2019년 7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관리 엄격화 조처로 한국 정부가 소·부·장 산업의 ‘탈일본화’를 추진했지만, 그것이 ‘탈일본 기업화’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의 지적과,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적기지 공격 능력’을 갖는다 해도 이 능력을 실제 행사하려면 일본의 독자 결정이 아닌 한·미·일의 협력 틀 속에서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란 진보 겐 게이오대 교수의 언급이 눈길을 끌었다. 반도체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기업들의 자발적 선택으로 구축돼온 한-일 분업 구도는 너무 효율적이어서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일본이 ‘억지력 확보’를 위해 스스로 공격 능력을 갖겠다고 결심한 이상 한-일 안보당국 간 소통은 이제 선택이 아닌 사활적 문제로 변하고 말았다고 개인적인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꽁꽁 얼어붙은 양국 관계를 어떻게 개선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 난처한 얘기가 나오니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정권 때 외무상(재임기간 2010년 9월~2011년 3월)을 지낸 마에하라 세이지 의원(국민민주당)의 언급이 폐부를 찔렀다. “한국 분들에게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한국 쪽에서 먼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동안 아베 정권, 스가 정권, 지금의 기시다 정권이 4년째 거듭해온 강경한 입장을, 한때 일본 야당의 실력자였던 의원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하고 나니 암담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여러 자리에서 ‘거듭거듭’ 강조했지만,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를 풀려면 우선 일본 ‘피고 기업’이 고령의 ‘원고’들과 마주 앉아 불행한 역사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양국 간 금전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 해도, 꽃다운 나이의 청년과 소녀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시킨 뒤 수십년 동안 ‘나 몰라라’ 방치해온 현실이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 기업들이 이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으로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주면, 원고들은 한-일의 역사적 화해라는 대의를 위해 현재 진행 중인 강제집행 절차를 멈추고,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금원을 고령의 원고들에게 선지급해야 한다. 이후 한·일 양국이 외교 협의를 통해 일본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기금을 설립하는 ‘문희상안’에 따른 해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 해법만이 일본이 소중히 생각하는 ‘65년 체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한국에서 최고 권위를 갖는 대법원 판결을 우회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마지막으로,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대일 정책에 대해서도 여러 논의가 이뤄졌다. 일본에 대해 군사 대국화, 대륙 진출 욕망 등 경직된 인식을 밝힌 이 후보의 인식에 대해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만 짧게 언급해둔다.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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