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본능에 갇힌 한국 사회

한겨레 2021. 12. 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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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층간소음 사건 논란을 보며

[왜냐면] 김진욱ㅣ서강대 사회복지전공 교수·경찰청 성평등위원회 위원

2015년 세살 난 시리아 난민 아이가 터키의 한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수많은 시리아 난민이 유럽으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며 크고 작은 인명 사고가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세계의 양심에 깊은 상처를 낸 이 사건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였지만, 가장 먼저 나타난반응은 비난의 대상을 찾는 것이었다. 난민들의 절박함을 이용하여 돈벌이에 혈안이 된 밀입국 업자들이 표적이 되었다. 엄청난 돈을 받고 작은 보트에 정원을 훨씬 초과하여 난민들을 태웠으니, 기상이 변덕스러운 지중해 바다에서 대규모 인명 사고가 일어난 것은 필연적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뒤를 이었다. 그들의 탐욕은 비난받아 마땅했지만 난민의 발생 원인부터 유럽연합의 난민정책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사슬을 보면 그건 지엽적인 문제였다. 이것은 한스 로슬링이 공저자로 참여한 <팩트풀니스>라는 책에 소개되고 있는 비난 본능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비난 본능은 ‘왜 좋지 않은 일이 있어났는지 명확하고 단순한 이유를 찾으려는 본능’을 말한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구조와 원인을 사실에 근거하여 종합적으로 진단하기보다는 손쉽게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을 보인다. 잘못한 쪽을 찾아내느라 진실을 왜곡하거나 사실에 근거한 이해를 방해한다.

필자가 비난 본능을 떠올리는 것은 최근의 한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방식이 이와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층간소음 민원으로 출동한 남녀 경찰이 범행을 막기는커녕 현장을 이탈한 사건 말이다. 물론 언론에 보도된 전후의 맥락을 살펴보면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찰의 직무유기라는 점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비난의 화살이 문제의 본질과는 다른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바로 ‘여성’ 경찰이다. 소위 ‘공부만 잘해 경찰공무원 시험에 통과한 여성’들이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질 신체적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회의적 주장들이 에스엔에스(SNS)는 물론 언론을 통해서까지 전해지고 확대됐다. 이는 명백한 비난 본능 프레임으로, 여성 혐오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히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후속 보도에서 밝혀진 것처럼 사건의 발단이 된 경찰의 현장 이탈은 남녀 경찰관 모두에게 해당된 것이었다. 여성 경찰관이 강력범을 제압하고 체포한 사례도, 반대로 남성 경찰관이 제압에 실패한 사례도 차고 넘친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당시 경찰이 총기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범인 제압을 위한 물리력 대응 훈련이 적절했는지, 물리력 대응 매뉴얼과 직무상 면책 요건이 경찰의 적극적 직무수행에 부합하는지도 따져보아야 한다. 권위주의 정권에서 서슬 퍼렇던 경찰의 공권력이 민주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불신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도 필요하다.

잠시 화제를 돌려보자. 2012년 여름, 학술대회 참석차 방문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주최 쪽 인사들과 담소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다음날이 2011년 캠핑 중이던 청소년 77명을 총기 난사로 살해한 브레이비크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내려지는 시점이라 했다. 정신감정 결과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법정 최고형이 내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필자를 포함한 한국인 참석자들은 이 사건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북유럽 복지국가의 대처 방식이 자못 궁금하였다. 한국에서라면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당장 사형에 처하라는 목소리가 높았을 것이기에.

어떤 벌을 받게 되리라 예상하느냐고 물었더니, 노르웨이의 법정 최고형은 징역 21년이라 했다. 놀라던 우리에게 그들이 덧붙인 말은 또 한번의 충격을 주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범죄자 개인을 비난하는 대신, 희생자를 애도하며 왜 그네들 사회가 그리도 흉폭한 범죄자를 낳게 되었는지 성찰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희생양을 찾아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쉽지만 피상적인 해법에 불과하다. 성숙된 사회로 한발 더 내딛기 위해서는 비난 본능 탓에 엉뚱하게 희생되는 집단이 없는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현장에서 묵묵히 수고하고 애쓰는 여성 경찰들에게 시민들의 따뜻한 격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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