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칼럼] 천하삼분지계와 미-중-러 삼각관계
[정의길 칼럼]미국이 중국과의 대결에서 주도권을 쥐려면 러시아와의 관계가 필수적이다. 삼국지의 ‘촉-오 동맹’ 같은 ‘중-러 연대’에 균열을 내야 한다. 러시아의 전통적 세력권을 미국이 인정하는 것이 출발이다.
삼고초려를 한 유비에게 제갈량은 천하삼분지계를 말한다. 사천에서 촉을 건설해 오와 동맹을 맺어서, 위에 대항하자는 전략이다. 촉과 오가 강대국인 위에 맞서는 데 동맹은 필수였다. 천하삼분지계는 ‘촉-오 동맹’이 건재하는 한 유지됐다. 하지만 오가 형주를 차지하려고 여몽을 보내 관우를 죽여서 촉-오 동맹이 와해되고, 이에 기반한 천하삼분지계도 붕괴됐다.
천하삼분지계는 현대 정치학의 용어로는 세력균형이다. 세력균형이란 당사자들에게는 안정적이고 유리한 세력관계를 의미한다. 3자의 삼각관계에서 2자의 동맹은 당사자들에게 유리하고 주도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힘이 가장 센 나라가 나머지 한 나라와 동맹을 맺는 것도 삼각관계를 보통 안정적으로 만든다. 삼각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무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전후 국제사회의 지정학은 기본적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세 나라에 의해 규정된다. 국력, 영토, 인구, 군사력에서 세 나라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3자의 관계는 격변해왔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항미 중-소 블록’은 1960년대 후반 ‘중-소 갈등’으로, 1970년대 초엔 ‘반소 미-중 연대’로 바뀌었다. 이는 소련 붕괴의 기반이 됐다. 1990년대에 미국의 짧은 일극체제 뒤 ‘대미 중-러 협력’ 구도로 바뀌었다. 이는 최근 들어서 ‘반미 중-러 연대’로 격상됐다.
미국이 중국의 부상 저지를 대외정책의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도전이 거세고 양자관계가 악화일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에 군사력을 구축하면서 내년 초 침공이 예상된다는 미국 정보당국의 평가도 나온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러시아를 기껏해야 ‘지역 열강’으로 취급하며 양자관계를 배려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연대는 강화됐다. 동해에서 두 나라의 합동군사훈련마저 빈번하다.
소련 붕괴 뒤 밀월이던 미-러 관계가 악화된 것은 미국이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해의 요체, 즉 고유의 세력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촉발됐다. 소련의 영역으로까지 미국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장이 강행됐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뒤 소련과 서방은 적어도 소련의 기존 영역으로 나토의 군사시설이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에 합의하고는 독일 통일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결과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러시아가 자국의 전통적 일부이자 안보의 요체라고 간주하는 우크라이나까지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을 추구했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내전까지 밀어붙이는 상황이 됐다.
러시아가 침략적 본성을 보인다고 비판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 러시아는 전통적인 안보정책을 관철하려고 할 뿐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안보정책의 요체는 깊은 종심의 확보, 즉 수도 모스크바 등 중심지에서 국경을 더 멀리 벌려놓아서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은 크림반도 합병이나 우크라이나 내전, 앞선 조지아 전쟁 등 옛 소련 영역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에 속수무책이었다.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단행해 강화해왔으나, 이런 군사적 개입에 직접적으로 맞설 대책은 없었다. 러시아가 내년 초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한다 해도 사정이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러시아 침공이 재앙으로 끝났듯이, 유라시아 대륙 내부의 옛 소련 영역은 러시아가 지정학상 압도적으로 유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를 결코 상실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풍부한 에너지와 자원 등에 힘입어 나름 자급경제권을 영위해와서 서방의 제재에 내성이 크다. 제재가 강화되면, 러시아의 에너지에 의존하는 유럽도 고통받는다.
미-중 대결이 본격화하면서 삼각관계의 변화가 한때 점쳐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개인적 호감을 보여 적어도 ‘대중 미-러 협력체제’가 시동되는가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미-러 관계는 악화일로다. 이에 비례해 ‘중-러 전략적 연대’가 강화됐다.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에서 주도권을 쥐고 유리한 세력균형을 만들려면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이 필수적이다. 삼국지의 ‘촉-오 동맹’ 같은 ‘중-러 연대’에 균열을 내야 한다. 러시아의 전통적 세력권을 미국이 인정하는 것이 출발이다. 양국 정상인 바이든과 푸틴이 7일 우크라이나 문제 등을 놓고 하는 화상회담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현재로선 요원해 보인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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