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막힌 '온플법', 논의 장기화 조짐에 소상공인·ICT업계 갈등 고조
[경향신문]
국내외 온라인 플랫폼의 갑질을 막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업계와 소상공인 측 갈등이 커지고 있다.
참여연대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5개 중소상인·시민단체들은 6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온플법 제정을 촉구했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와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에는 각각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가 발의한 온플법이 체류 중이다. 당초 오는 9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법안심사소위를 열었으나, 두 법안 모두 통과되지 못했다.
사실상 연내 처리를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온플법 입법화를 찬성했던 소상공인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네이버·카카오가 의장사로 있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를 중심으로 정보통신기술(ICT) 단체들이 온플법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이날도 한국소비자법학회와 함께 ‘온라인플랫폼법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토론회를 열고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공정거래 가로막는 플랫폼 기업 항의’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양흥모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집행위원은 “자영업자들은 플랫폼사에 경제적으로 종속돼 끌려가고 있다”며 “플랫폼사들이 공존이 아닌 자신들만의 생존을 위해 법 제정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배재홍 전국유통상인협회 본부장은 “플랫폼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 기존 유통시장의 질서가 흔들리면서 피해는 중소상인 자영업자의 몫이 되고 있다”며 “공정 경제를 위한 제도적 질서를 마련하자는 요구가 어떻게 혁신을 저해한다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중소상인·시민단체들은 성명을 통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들은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 조작, 부당한 광고비·수수료 부과, 일방적인 정책 변경, 자사상품 우대, 타 플랫폼 입점 방해 등과 같은 다종다양한 불공정거래행위가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은 자신의 플랫폼에서 다른 이용사업자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직접 판매도 하는 이른바 ‘선수와 심판’을 겸하며 경제적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ICT 업계가 주최한 긴급토론회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과 방송통신위원회 소관의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법’의 중복 규제 조항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성급하게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산업 성장을 저해만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정신동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유럽연합(EU)에서는 P2B(플랫폼·입점업체 간 거래) 규제법을 제정하기까지 3~4년 간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며 “그런데 우리는 논의가 시작된 지 불과 10개월 만에 법을 제정한다고 해 그간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발제자인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나 EU의 사례를 참고한다고 하는데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라며 “다양한 사업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국내에서 관련 법안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산업의 발전을 막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법안을 둘러싼 소상공인과 업계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여당이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를 앞두고 플랫폼 기업 규제를 최우선 처리 법안으로 꼽은 만큼 약 5개월 남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임시국회를 열고 온플법을 통과시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최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플랫폼 기업 규제 현황을 질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며 “여권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까지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언급하는 등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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