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권보호관, 타협된 인권

한겨레 2021. 12. 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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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군인. <한겨레> 자료사진

[숨&결] 방혜린ㅣ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예비역 대위

“우리 부대에 절대 안 알려지는 거 맞죠?” 내담자들이 상담에 앞서 꼭 묻는 질문이다. 사실 소속 부대가 본인의 신고 사실에 대해 절대 알지 못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은 내담자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폐쇄적이고 조직 우선의 군대 문화, 조직원이 24시간 일상을 함께하는 구조, 물리적으로도 사회와 단절된 환경은 사건 관계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소문을 빨리 돌게 한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소문은 피해자에게 치명적이다. 발 없는 소문은 여러 사람을 거쳐 피해자에 대한 거대한 악의로 변모한다.

최근엔 부대 내에서 사건을 경험했을 때 신고를 할 수 없어 어려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폭력 신고율의 경우 매해 증가 중인데, 신고율이 상승한다는 것은 좋은 신호이다. 이제까지 은폐되거나 묵인된 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센터로 접수되는 사건 중 상담 전 이미 법적 절차가 완만히 진행 중이거나, 법률조력과 의료지원을 받고 있는 경우도 많다.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신고 이후’의 2차 피해다. 피해자가 부대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은 그나마 소극적인 2차 피해에 해당한다. 가해자 주변인이 피해자의 먼지 하나까지 털어 역으로 피해자에 대한 징계를 의뢰하거나, 본인이 하지도 않은 일로 추궁받거나, 배려한답시고 책상도 하나 없는 ‘시간과 정신의 방’ 같은 보직에 배정하기도 한다. 의사와 상관없는 휴직을 강권할 때도 있다. 이런 2차 피해는 피해자를 향한 악의적인 소문에 날개를 달아주고, 또 다른 피해로 확대된다.

군대에서 이런 2차 피해가 쉽게, 그리고 또 크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은 피해자를 비롯해 사건을 처리하는 모든 관계자들이 같은 식구인 군인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처리되고 가해로부터 보호받을 것이란 기대로 시작한 신고는 조직 내로 다시 사건이 수렴되면서 여러 ‘내부 사정’들과 뒤엉키게 된다. 그 속에서 고립된 채 실타래를 푸는 것은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다. 피해자들은 기존의 피해자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조직에서 배제되고 마는 결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휘체계를 무시했다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굳이 군과 관련 없는 바깥 기관을 찾게 되는 것이다.

지금 ‘군인복무기본법’에 흔적처럼 남아있는 군인권보호관은 수많은 군대 내 피해자들의 희생 끝에 마련된 제도이다. 이 법 얘기가 나온 당시만 해도 ‘윤 일병 사건’을 포함해 군대에서 맞아죽고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거나, 결국 총기 난사까지 이르게 되는 비극이 잦았다. 여야 할 것 없이 군 조직으로부터 독립되어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가진 군 옴부즈만의 필요성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군인권보호관은 딱 거기까지의 진전만이 있었다.

지난 2일, 근거가 마련된 지 5년 만에 군인권보호관 설치에 관한 법안이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하였다. 그날 운영위원회 회의에는 고 윤승주 일병 어머니,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가 방청인으로 참석해 호소하였으나, 결국 불시부대방문조사권과 같이 군인권보호관의 독립성과 역할을 보장하는 안은 반영되지 않았고, 국회와 국가인권위와 국방부의 ‘인권 타협’ 끝에 이름뿐인 자리로 정리되었다.

군은 군인권보호관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다며 선전하겠지만, 군인권보호관은 부대에 먼저 피해 내용에 대해 알린 뒤 허락을 받아야만 방문해 조사를 진행할 수 있고, 그나마 부대 사정에 따라 언제든 중단될 수도 있다. 결국 조직과 독립된 곳을 통해 온전히 피해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고 신고 이후에도 자신의 삶은 위협당하지 않아야 하는, 그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가 또 날아간 셈이다. 국방부는 또 국회와 국가인권위와의 타협에 성공해 조직을 보위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굴 위한 옴부즈만인지, 다음 희생자가 나오면 그땐 무엇이라 둘러댈지, 다만 착잡한 마음으로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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