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제기하고 해결은 못한 '문제의 정부'..내각 약화된 '청와대 정부' 전락" [청론직설]
불평등 해소 위해 교육개혁 추진한다는 발상은 모험주의
부동산·소주성·탈원전 등 무리한 정책, 외려 문제를 키워
'청년부' 등 특정 집단 위한 부처 신설은 갈등 증폭 초래
연금 개혁은 세대간 정의의 문제, 차기 정부 1순위 과제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국민을 현혹하는 포퓰리즘이 활개를 치고 있지만 정작 나라의 미래를 위한 비전과 대안 제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중국의 패권 전쟁과 4차 산업혁명, 포스트 코로나 시대 등이 겹친 대전환기이므로 차기 정부의 책임은 어느 때보다 무겁다.
서울대 국가전략위원회는 국가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들을 진단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지난 2019년 서울대 국가정책포럼을 흡수해 출범했다. 국가전략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만나 한국 사회의 문제점과 차기 정부의 과제 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홍 교수는 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치가 공공선 추구보다는 ‘모 아니면 도’ 식의 정권 획득을 위한 사활 투쟁으로 전락했다”면서 “포퓰리즘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정책 중심의 선거가 될 수 있도록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분석하는 감별사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정권 초기에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강력한 조치를 무리하게 동원하다가 외려 문제를 키웠다”며 부동산 대책과 소득 주도 성장, 탈원전 등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이어 “미래 세대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교육·노동·연금 개혁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교육 개혁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기계론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과를 총평한다면.
△촛불 민심을 받드는 ‘촛불 정부’라는 정치적 소명을 내세웠지만 성공적인 5년으로 평가되기 어려울 것이다. 문제를 제기했지만 해결하지는 못한 ‘문제의 정부’로 끝날 처지다. 집단 사고에 사로잡혀 이념에 편향된 정책을 남발했다.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이 만기친람했고 ‘비서 정치’로 흐르면서 정부, 즉 내각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정책 목적은 그럴듯하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정책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정책과 소주성이다. 부동산 문제의 경우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급하게 서두르다가 무리수를 뒀다. 대통령의 국정 장악 의지를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의사결정권 등 모든 권력 자원이 청와대에 집중되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았다. 모든 정보를 다 갖고 있다며 오만했고 캠프 밖 사람들을 무시하는 바람에 협치와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했다.
-먼저 교육 분야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20세기 교수가 21세기 학생을 19세기 교실에서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현 정부는 초중등교육 정책에 집중하다 보니 대학 정책에서 뚜렷한 의지도, 구체적인 계획도 보여주지 못했다. 학벌주의, 입시 과열 등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크다 보니 화살은 명문대로 쏠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창의 인재 육성을 위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들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상향 평준화를 지향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고등교육 정책이 시급하다.
-교육평등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수월성 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법은 매우 기계론적인 사고다. 교육이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다양한 계층에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은 필요하다. 하지만 교육 문제를 해결하면 사회적 불평등을 척결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단순 논리다. 교육 시스템을 뜯어고쳐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정치적 모험주의는 교육 개혁에 대한 혼란과 적대적 반발을 초래할 뿐이다. 고등교육의 경쟁력은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대선 후보들은 고등교육 개혁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높여야 할 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육 격차가 심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 격차 심화라는 현실적 문제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비대면 교육 전면 실시로 교육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예컨대 학생들이 미리 온라인 강좌 등을 들은 뒤 강의실에서 교수들과 토론하면서 논의를 진전시키는 ‘플립트러닝(flipped learning)’을 활용하는 것이다. 미리 수업 내용을 듣고 강의에 참여하면 지식의 축적 수준은 더 깊고 더 빨라지기 마련이다. 이런 식의 혁신적인 수업 방식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교육 현장에 접목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재정 투자의 획기적 확대도 뒤따라야 한다. 단적으로 고등교육 정부 지원금을 국내총생산(GDP)의 1%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2021년 현재 한국은 GDP의 0.6% 정도를 고등교육 지원에 투입하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1%)보다 낮은 수준이다.
-수도권의 경우 대학정원총량제로 반도체 등 전략 산업 인재 양성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집중 억제는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억제 위주로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외려 지방 부활 정책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방대학 소멸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지방대학과 수도권 대학의 공동 노력을 통해 지방 소멸을 막고 창의 인재를 육성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방대와 수도권 대학 간 협업으로 한국형 ‘미네르바스쿨’을 만드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미네르바스쿨은 물리적인 교실이 없는 혁신적 학교로 모든 학생은 4년 내내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는다. 지방 거점 대학에 입학해 1~2학년 학부 생활을 하면서 인문 교양을 쌓고 리더십을 키운 후 3~4학년 때 수도권 대학에 편입하는 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특히 한 대학, 한 학과에서 계속 수학하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수업을 듣도록 유도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 이런 형태의 혁신형 학부대학을 지방에 10곳 이상 세우면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과 경험을 쌓은 인재들을 폭넓게 확보할 수 있다.
-연금 개혁도 뜨거운 감자다. 이 상태로 방치하면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될 텐데.
△연금 문제는 확정된 미래다. 현행대로 국민연금 제도를 유지하면 오는 2054년 연금 기금이 고갈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바꾸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연금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방향을 찾아가야 하는, 세대 간 정의의 문제라는 점에서 차기 정부에서 1순위로 공론화해야 한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청년부’ 신설 등을 언급했는데.
△청년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이의 해결 방식으로 부처를 신설한다는 데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정부 내 조직이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 다른 부처 혹은 집단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행정 조직을 한 번 만들면 없애는 데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고 정책을 정치화할 위험도 크다. 더구나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부처를 만든다는 발상은 일종의 ‘상징 정치’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집단을 내세우는 방식보다는 고독사 문제 해결을 위한 영국의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처럼 시대적 의제를 전담하는 부처를 만들고 과제를 해결한 뒤 다른 조직으로 바꾸는 식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최근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커지면서 이번 대선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세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유독 강하다. 세금이라는 수단을 남용하면 당초 목표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돼 부작용이 크다. 특히 현 정부는 세금 수단을 남용하는 과정에서 조세 형평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 높은 세금은 증여 및 월세 전가 확대 등으로 이어졌다. 세금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안 되는 것도 따져볼 문제다. 국민의 혈세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국회의 감시 기능이 매우 부족했다.
-미래 세대의 지속 가능한 삶,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등을 위해 선결돼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안전·공정·혁신·포용 등이 미래를 위한 핵심 가치라고 본다. 국가가 감염병이나 전쟁 등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안전을 지키고, 시대적 화두인 공정을 재건하며, 미래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혁신을 꾀해야 한다. 아울러 포용 없이는 나머지 세 개의 핵심 가치가 실현될 수 없다. 관건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사회적·경제적·문화적 노력이 이뤄질 수 있는가이다. 이런 맥락에서 강소국 벤치마킹 모델로 회자되는 노르딕(북유럽) 국가들의 차별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바로 공공의 가치에 대한 공유된 믿음, 사회 구성원 상호 간의 신뢰와 존중이다. 이러한 사회로 도약하려면 대선 후보들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나라의 미래 먹거리와 살기 좋은 삶을 위한 정책과 비전을 내놓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야 한다.
He is···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독일 괴팅겐대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행정법·환경법·법정책학 분야를 주로 연구해왔다. 주요 저서로 ‘상징입법, 겉과 속이 다른 입법의 정체’ ‘한국 행정의 역사적 분석:행정과 법’ 등이 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번호변경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한국공법학회 회장, 한국환경법학회 회장,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서울대 국가전략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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