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첫 女대통령은 불도저" 금발 금수저, 새 역사 쓸까

추인영 입력 2021. 12. 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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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프랑스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발레리 페크레스(가운데). EPA=연합뉴스


“프랑스의 첫 여성 대통령, 제가 되겠습니다.”
프랑스 수도권 일드프랑스 지역단체장인 발레리 페크레스(54)는 지난여름 지지자들과 만나 이렇게 선언했다. 프랑스 공화국의 유리천장을 깨겠다는 약속이다. ‘금발 부르주아’라는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해 농촌 지역 순회에 나선 자리에서다. 대선 일정이 성큼 다가온 지금, 그의 약속도 현실에 한 걸음 가까워진 분위기다.


드골의 정통 우파, 첫 여성 대선 후보


페크레스는 지난 4일(현지시간) 프랑스 우파 정당인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고 AFP 등이 보도했다. 전날 1차 투표에서 2위에 그쳤던 페크레스는 결선투표에서 61%를 얻어 에릭 시오티 하원의원(39%)을 큰 차이로 따돌리고 막판 역전승을 이뤘다. 1차 투표에서 탈락한 자비에 베르트랑 전 장관과 미셸 바르니에 전 브렉시트 담당 유럽연합 협상 대표 등이 페크레스를 지지하면서 이변이 연출됐다.
4일 프랑스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발레리 페크레스. 로이터=연합뉴스

공화당은 샤를 드골을 비롯해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등을 배출한 정통 보수 정당이다. 하지만 2012년 대선 패배로 사르코지의 연임이 실패한 뒤 마리 르펜이나 에릭 제무르 등이 이끄는 극우 야당에 가려 침체기를 겪었다. 보수당에서 여성 대선후보를 낸 건 처음이다. 페크레스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파 공화당이 돌아왔다”며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이라고 선언했다.

페크레스는 중도 우파 성향이었지만, 일드프랑스 지사 시절 강경 우파의 면모를 보였다. 야외에서 부르키니(전신 수영복) 착용을 금지하고 동성 결혼에 반대했다. 이번 대선 경선 슬로건도 ‘프랑스의 자존심 회복과 프랑스인 보호’였다. 그는 연설에서 “폭력과 이슬람 분리주의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통제 불가한 이민에 위협받는 이들의 분노를 느낀다”며 이민 할당량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은퇴연령 연장(65세)과 공공 일자리 축소, 원자력 증설 등도 약속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롤모델로 꼽는다. 실제 경선 기간엔 “나의 3분의 2는 메르켈 총리, 나머지 3분의 1은 대처 총리”라고 주장했다.


정통 엘리트 코스 밟은 ‘불도저’


지난 10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왼쪽)과 인사하는 발레리 페크레세 일드프랑스 지사. 로이터=연합뉴스

페크레스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에게 “여자도 남자만큼 똑같이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하던 아버지는 경제학 교수였고, 외할아버지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 딸이 앓던 식욕부진을 치료한 유명 정신과 의사였다. 사립학교에서 2년을 월반한 페크레스는 프랑스 최고 명문 그랑제콜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으로, 유럽 최고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HEC 파리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어 외에도 영어와 러시아어, 일본어 등 4개 국어에 능통하다. 자녀 셋을 둔 워킹맘이기도 하다.

정계에는 1998년 시라크 대통령 보좌관으로 입문해 시라크와 같은 ‘불도저’라는 별칭을 얻었다. 무명의 신인으로 처음 나선 총선에선 유명 장군을 상대로 이긴 페크레스는 2015년 좌파 성향이 강한 일드프랑스에서 지사로 당선되면서 거물로 떠올랐다. 사르코지 행정부에선 교육부 장관으로 수년간 최악의 시위를 불렀던 대학제도 개혁을 이끌었다. 페크레스는 “거리에서 9개월을 버티면서 아무도 원하지 않던 가장 위험한 개혁을 맡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예산 장관으로는 재정 위기를 돌파해야 했다.

내년 대선 결선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여론조사에선 지지율 11%로 마크 대통령(24%)과 마린 르펜(20%), 에릭 제무르(13%)에 이은 4위였다. 다만 이번 경선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현지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된 만큼 지지율이 급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5일 그를 두고 “프랑스 첫 여성 대통령이 될 불도저”라고 평가했다. 페크레스는 이제 2017년 최연소 대통령으로 파란을 일으킨 에마뉘엘 마크롱의 구호를 이어받았다. “바꾸겠습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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